58강 [2.5.6-11] 율법의 명령은 자유의지의 한계를 일깨우고 약속을 제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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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 2.5.6-11 (2권 156-168페이지)



율법의 명령은
자유의지의 한계를 일깨우고
약속을 제시함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선물로 부여하셨습니다.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선을 행할 의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유의지는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우리에게 부여됩니다.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의지’입니다. 이 자유의지는 성령의 역사가 없고서야 결코 우리에게 존재할 수도 없고 작용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lex)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뜻을 알리기 위하심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니 거룩을 명령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거룩을 행하게끔 하나님이 이끄십니다. 율법은 ‘언약의 법’(lex foederis)이므로 율법에는 ‘명령’(imperium), ‘규범’(regula), ‘교훈’(praeceptum)이 있는 동시에 ‘약속’(promissio)이 있습니다. 약속이 있는 계명이 율법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명령하실 때 우리가 스스로 행할 수 있기 때문에 명령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실 때 하나님은 우리 자질로 그것을 행하라고 알리시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베푸셔서 하나님이 행하게 하시기 위해서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율법을 받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율법을 주실 때 가장 패역한 인간의 모습을 동시에 드러내어 보여 주심으로 율법을 사람이 지킬 만하기 때문에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뜻을 알리시되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율법을 지키게 하시겠다는 것 아닙니까? 지킬 만해서 주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2계명을 모세가 받아서 내려오는데 그 형인 아론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분명한 것이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시는데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저주이겠죠.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이 친히 이루신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이겠죠.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이라도 명령하십니다. 그래서 친히 이루심으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기독교 강요』. 2.5.6.]

그들(펠라기우스주의자들)은 그 규범들이 우리의 재능들에 맞추어졌으므로(facultatibus nostris sic attemperata esse) 그것들에 의해 분명히 요구되는 것은 무엇이든 간에 끝내 우리가 필연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개개의 계명들을 낱낱이 파악하고 그것들로부터 우리의 능력을 측정하는 잣대를 마련한다(ex illis virium nostrarum modum metiuntur).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5.6.

     펠라기우스는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명령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은, 율법은 사람들의 능력의 척도(modus)다, 자질의 척도다’라고 아주 교만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만큼 우리가 대단한 존재라는 것이죠. 할 수 있으니까 요구하시는 것이고 곧 요구하시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능력의 척도라고 펠라기우스는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합니까? ‘율법으로 죄를 깨닫는 것’이라고 했어요(롬 3:20). 율법은 죄를 생각나게 한다고 했습니다. ‘율법은 범법하여 더하여진 것’이라고 했습니다(갈 3:19).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롬 5:20). 율법을 우리가 스스로 지켜서 율법의 의로 구원에 이룰 수 있다면 결코 이런 말씀을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율법은 오히려 우리의 범죄를 들춰내고, 고요한 수면에 파문이 일듯이, 율법이 있으므로 우리 심령이 그 찔림으로 화들짝 놀라게 하고, 그래서 죄를 알게 하고, 곧 율법은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알려 주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없음을 알려 주므로, 그런데 그 율법은 ‘언약의 법’이므로, 모세의 율법이 아브라함의 언약을 폐지할 수 없다고 갈라디아서에서 말씀하셨듯이, 바로 율법을 통하여 죄를 깨닫는 그 깨달음과 함께 즉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되는, 그러한 율법은 ‘은혜의 법’(lex gratiae)이라는 것이죠. 

[『기독교 강요』. 2.5.7.]

율법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동시에 그것에 복종하는 능력이 하나님의 선하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가르치며 그 능력이 우리에게 부여되도록 간청하는 기도를 드리도록 우리를 권유하고 있다(simul ac quid agendum sit nobis praescripsit, obediendi virtutem a Dei bonitate esse docet; ideoque ad preces invitat quibus eam nobis dari postulemus).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5.7.

     이러한 것을 자유의지에서 칼빈이 말하고 있습니다. 왜 이럴까요? 우리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이제 하나님께서 거듭난 백성에게 주시는 자유자의 의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법 앞에 섰을 때, 그때에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이루신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율법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것을 명령합니다. 그래서 그 명령 가운데 약속을 바라보게 합니다. 기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에는 ‘규범’이 있고, ‘명령’이 있고, ‘지시’가 있고, 그리고 ‘교훈’이 있고, 동시에 율법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약속’이 있고, ‘은혜’가 있고, ‘자비’가 있고,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다 이루신 복음의 역사’로 율법도 제 기능을 한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명령하셔서 우리가 그 자신으로부터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신다(iubet Deus quae non possumus, ut noverimus quid ab ipso petere debeamus). … 믿음은 율법이 명령하는 것을 성취한다(fides impetrat quod lex imperat). … 참으로 하나님은 믿음 자체를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하지만 그가 찾으실 것을 주지 않으시고서는 요구하시는 것을 찾지 않으신다(imo fidem ipsam exigit a nobis Deus, et non invenit quod exigat, nisi dederit quod inveniat). …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을 주시게 하며 원하시는 것을 명령하시게 하라(det Deus quod iubet, et iubeat quod velit). -아우구스티누스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5.7.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명령하셔서 우리가 진정 하나님께 무엇을 구해야 하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가 이미 본 적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을 주시게 하고 원하시는 것을 명령하시게 하라’라고 그렇게 했습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한다면 ‘명령하시는 것을 주시옵소서. 그리고 원하시는 대로 명령하시옵소서,’ 이것이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의 가장 유명한, 우리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유명한 기도입니다. “Da quod iubes, et iube quod vis.” 라틴어로 이렇게 표현됩니다. ‘명령하시는 것을 주시옵소서. 그리고 원하시는 대로 명령하시옵소서.’ 이것은 도치되어 있는 문장입니다. 정치법으로 다시 써 본다면 ‘원하시는 대로 명령하시고 명령하시는 대로 주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령하라는 것입니다. 근데 말씀대로 살기는 사는데, 내 능력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 달라는 것입니다. ‘명령하신 대로 주시옵소서. 그리고 원하시는 대로 명령하시옵소서.’ 여기에 자유의지 교리의 핵심적인 요체가 있는 것입니다. 

처음 인류는 죄를 짓지 않을 수도 지을 수도 있는(posse non peccare sive peccare) 상태에서 자기의 자유의지에 따른 순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으나 타락 후 인류는 전적으로 오염되어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non posse non peccare) 상태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순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특별한 은혜를 베푸셔서 택함 받은 자들이 이전의 상태로 회복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전보다 더 낫게 하셔서 이제는 죄를 지을 수 없는(죄를 지어서는 안 되는, non posse peccare) 상태에 있게 하신다. 할 수 없는 것을 명령하셔서 행하게 하시되, 먼저 행할 은혜를 베푸심으로써 그렇게 하신다.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5.7. 각주 317.

     거듭난 우리는 하나님께서 ‘새 영’, ‘새 마음’, ‘부드러운 마음’을 주셔서 말씀을 받게 하셨습니다, ‘옥토’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떨어질 때 일시적으로 우리의 모습을 보아 좌절할 수도 있고 낙담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말씀을 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뭐든지 말씀을 주십시오. 그런데 말씀대로 행할 수 있게끔 능력 주십시오. 명령하십시오. 뭐든지 말씀을 명령하십시오. 그리고 능력을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라는 것이죠. 이것이 우리가 자유의지 논쟁을 살펴보는 유익함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 안에 의지를 주셨습니다, 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뜻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이 떨어져도 도망칩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역사하면, 우리를 거듭나게 하면, 원함과 뜻함도 하나님께 있고 이루심도 하나님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자유의지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의지는 원하는 것도, 뜻하는 것도, 이루시는 것도, 열매 맺게 하시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의지 교리의 핵심인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5.8.]

     선지자들은 자주 ‘여호와께서 우리를 돌이키소서. 그리하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렘 31:18-19). ‘내 마음을 돌이키시옵소서.’ 이것은 곧 ‘새 마음을 주시옵소서’[입니다.] 새 물이 내려와야 헌 물이 맑아질 거 아닙니까. ‘내 마음을 돌이키옵소서. 먼저 나를 돌이키옵소서. 그러면 내가 돌아가겠나이다.’ 내가 먼저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면 내가 돌이키겠나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것 그것은 하나님이 은혜로 이루십니다. 은혜가 없다면 어떤 교훈들도 성취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훈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드러냄으로 영광 받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 삼으심도 은혜요,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도 은혜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령을 하시고, 그 명령을 하나님의 은혜로 이룸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의’와 ‘거룩함’, ‘경건’, ‘순수함’, 그것은 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하여 사도행전 13장 43절은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0절은 ‘형제들이여 주 안에서 강건하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은 ‘너희가 하나님의 영 안에서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고 그 성령 안에서 구원의 날까지 인침을 받았으니’ 그 인침 가운데, 견인 가운데 나아가라고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믿음의 역사”(살후 1:11),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이 모든 것(살전 1:3)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권고하시고 권고를 받아들일 마음도 또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16절에 보면 ‘디도에게 권고를 받아들일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이것은 마음조차도 그 출발이, 기원이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5.9.]

     회심을 논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절반, 내 공로 절반,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돌이킨 것은 내가 절반, 하나님이 절반,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슥 1:3). 이런 구절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너희는 내게 돌아오면 내가 너에게로 나아가기라.’ 구약의 이런 표현은 동시성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아오시면 우리가 돌아가게 됩니다. 결코 이것은 우리가 먼저 돌아가서 하나님이 나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먼저 문을 두드리니까 우리가 그 문을 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수여하신 분이 율법의 목적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례와 규례와 법도와 계명과 그 율법을 주신 것은 그 율법이 영혼을 소성하고 마음을 즐겁게 하고 지혜롭[게 하]고, 그리고 꿀송이보다 달고 그렇게 말씀을 주신 것은(시 19:7-10) 그 말씀을 끝내 은혜로 이루시기 위함이신 것입니다. 
     자유의지는 회복된 의지요, 회복된 의지는 은혜 가운데 역사하는 의지입니다. 은혜가 없이는 우리가 결코 자유롭지 않습니다. 은혜가 앞서고 자유가 후속합니다. 은혜가 먼저 있고 자유의지가 수종 듭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순종하는 그 역사는, 진정 우리가 인격적인 순종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의지조차 선물로 주시는 그 은혜인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5.10.]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암 5:14)라고 했습니다. ‘즐겨 순종하면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칼에 삼켜 버려지리라’(사 1:19-20)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생명과 사망의 기로에 놓인 선택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유의지가 우리 안에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아실 것은 그 자유의지는 은혜로 우리에게 부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격을 보시고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없는 그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내세워서 자유의지를 말할 수 없습니다. 교훈을 받는 것도, 교훈대로 뜻하는 것도, 그래서 끝내 교훈의 열매를 맺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모든 종류의 선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의 백성조차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지키십니다. 

[『기독교 강요』. 2.5.11.]

     하나님이 마음을 주셔야 “내가 주의 율례들을 영원히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시편 119편 112절의 다윗과 같은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기꺼이, 즐겁게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바친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 내게 임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내가 내 의지의, 내 의향(意向)의 조성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뜻조차, 의향조차도, 의지조차도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2-13).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에 덕을 더하시고, 성령을 소멸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를 지키시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씨가 거한다.’ 요한일서 3장 9절에 [말씀합니다.] 그래서 끝내는 믿음으로 이기게 하시는 그것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요일 5:4). 

[결론]


     이 부분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율법에는 명령이 있고, 그 명령에는 그것을 수행할 능력에 대한 약속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율법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것을 명령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는 우리의 무능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지 우리의 자질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율법을 수행할 능력이 하나님에 의해서 부여되는 것이기 때문에, 율법의 교훈에는 곧 하나님이 이루심에 대한 약속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말씀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권고하시는 것조차도 은혜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나아가야 합니다. 
     네 번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율법을 행할 선한 의지는 바로 하나님의 선물로서 부여된다는 것입니다. 의지를 주시는 분도, 그 의지의 진정한 자유를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오. 자유의지에 선행의 행함도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은혜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58강 결론


  1. 율법에는 명령이 있고 명령에는 그 수행이 하나님의 능력에 따른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2. 율법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것을 명령하므로, 그 명령이 명령을 받는 자의 자질의 척도가 될 수 없습니다.
  3. 율법을 수행할 능력은 율법의 수여자이신 하나님에 의해서 부여되며, 율법의 교훈은 은혜가 없이는 성취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이 무엇이든 명령하시되 그 명령하신 것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4. 율법을 수행하는 영혼의 선한 의지는 하나님의 선물로서 주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