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강 [2.4.1-5] 사람의 의지가 사탄에 예속되는 것도 하나님의 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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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 2.4.1-5. (2권 131-139페이지)



사람의 의지가 사탄에 예속되는 것도
하나님의 작정



     사람은 전적 타락 하여서 태어나면서부터 사망의 형벌에 속하고 전적 무능, 전적 부패 한 상태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나온 것은 그 무엇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해서 새 마음을 주시고 새 영을 주시고 그 가운데 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의지, 그것을 부여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기도 하고 예배도 드리고 찬송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4.1.]


     사람은 타락하여서 누구나 할 것 없이 필히 죄를 짓습니다. 타고난 원죄와 함께 자범죄가 있습니다. 필히 죄를 짓지만은 할 수 없어, 마지 못해, 강제로 짓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원해서 짓는 것입니다. 펠라기우스(Pelagius, 360-418경)는 ‘필히 죄를 짓는다면 그 죄는 우리의 죄가 아닐 것이요, 필히 죄를 짓지 않아도 되는 가운데 죄를 짓는다면 그 죄는 피하면 되지 않겠냐,’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정반대로 생각했습니다. 필히 죄를 짓게 되지만 그 죄는 우리가 원하여서 짓는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본성에는 의지가 있는데 그 의지는 죄에 있어서 자유로운 의지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필히 범죄하는 것은 내 자유의지 가운데 범죄하는데, 그 자유의지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할 의지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사람들은, 철학자들은 그것을 자유의지라고 하지만 그것은 노예의지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의지는, 우리가 말하는 자유의지는 거듭난 자만이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이 믿음을 선물로 주셨듯이 하나님이 자유롭게 하는, 죄에서 해방시킨 그의 자녀에게 주시는 의지 그것만이 자유의지인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위에 올라타면 그는 절도 있고 숙련된 기수로서(moderatus et peritus sessor) 의지를 침착하게 다스리고, 너무 늦을 때는 박차를 가하며, 너무 빠를 때는 제어하며, 너무 거칠거나 날뛸 때는 진정시키며, 제 길에 들어서도록 이끄신다. 그러나 만약 마귀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 덜떨어지고 방자한 기수(stolidi ac petulantis sessoris)와 같이 광포하게 몰아 길을 아주 벗어나고, 개골창으로 몰아넣으며, 절벽 아래로 내달리게 하며, 자극을 가하여 오만하고 광포하게 만든다. -아우구스티누스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4.1.

     우리는 평생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그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자녀 삼아 주시는 그 은혜의 빛이 비치지 않는다면, 죄의 노예로, 마귀 사탄의 수하로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유명한 ‘기수의 비유’라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의지에 누가 올라타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의지를 주장하시면, 말에 기수가 있듯이 하나님의 영, 성령이 우리 사람의 의지를 이끄시면, 그 의지는 거룩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고 그러한 길로 나아가는 그러한 작용을 할 것이요, 반대로 사람의 의지에 마귀가 올라타면 그 의지는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거스르고 미쳐 날뛰다가 결국은 절벽 아래로, 개골창으로 빠지고 만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의 의지는 그 자체로 우리가 무엇을 규정할 수 없고 그 사람이 누구냐 이 말입니다. 그 사람이 성령의 은혜로 영의 사람이고 영의 소욕에 속한 사람이라면 그 의지도 성령의 뜻 가운데 이끄심을 받겠지만, 사람이 거듭나지 못하고 여전히 죄의 종이요, 육에 속한 그러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면 그 사람에게 의지라는 것은 그저 죄를 짓는 그러한 의지, (세상에서는 그것도 자유의지라고 하는데) 그것은 노예의지, 바로 죄에 얽매인, 죄에 종속된, 죄에 속박된 그러한 의지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간혹 인간을 사탄의 행위에 맡겨 두십니다. 그리하여서 사탄의 종이 되게도 하시고 사탄의 지배를 받는 가운데 사탄의 명령을 따르는 그러한 위치에 두기도 하십니다. 심지어 믿는 자들에게도 간혹 사탄이 그 궤계와 술수를 부려서 믿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조종하고 하는 것을 하나님이 허용하시기도(permittit) 합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에게 사탄의 일을 허용하실 때는 그 믿는 사람들을 훈련시키기 위하심이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탄의 그러한 조정을 받게 하시는 것은 그것은 사탄의 그야말로 실제적 지배하에 두셔서 유기시키는 것이죠. 그래서 세상에서의 많은 일들은 그 본질이 사탄의 작품들이라고 할 만큼 사탄에 속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가 성령에 거듭난 가운데 있다면 그 의지가 성령의 소욕이 될 것이요, 성령의 열매를 맺을 것이요, 성령이 마땅히 하나님께 간구하는 바를 구할 것이요, 그리고 성령이 최종 작용을 하고 또 궁극적으로 역사를 이루는 그러한 의지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죄의 뿌리로부터는 악한 것만이 나오고 그것은 사탄의 나라를 이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루시는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는 선의 나라요, 하나님의 뜻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그 뜻이 성령의 역사로 믿는 자들에게 자유의지를 일으킬 때 그 자유의지야말로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행할 의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4.2.]

     하나님은 일을 행하실 때 목적을 먼저 생각하십니다. 과정에는 어떤 재난이 따르고 환란이 따르기도 하지만, 욥의 고난이 그러하지 않습니까, 그런 과정에서는 사탄을 사용도 합니다. 그리하여 사탄을 통하여서 육체에 속한 것을 빼앗기도 하고 질병을 내리기도 하고 이러한 일들을 하십니다. 그렇지만은 궁극적으로 사탄을 사용한다고 해서 사탄의 지배하에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욥의 경우에서 보듯이 끝내는 하나님이 세우기 위한, 온전케 하기 위한 그러한 과정에서 사탄들의 술수조차도, 그 사탄의 권세조차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아까도 말했듯이 유기된 자들(reprobus)에게는 사탄의 역사가 궁극적인 의미를 가질 때도 있겠죠. 그렇지만 유기된 사람을 향한 사탄의 지배도, 권세도 하나님의 허용(permissio)이 없이는 하나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빛으로 오십니다. 그 빛이 우리와 함께 있을 때 우리의 눈이 밝아지고, 눈이 밝아져야 보이고, 보여야 알고, 알아야 바로 뜻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무리 밝은 곳에 있다 해도 시력이 없으면 또 되지 않지 않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굳어져 있다면, 그래서 도무지 이 시력이 살아 있는 시력이 아니라 그저 눈은 떠 있으나 전혀 시신경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돌과 같은 마음을 살과 같은 마음으로 바꾸어 주셔서, 우리 시신경이 움직여서 시력을 가지게 되듯이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에 그의 말씀에 부합하게 움직여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4.3.]

     어떤 경우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사탄조차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활동할 수 없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일을 거스르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사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도 그때도 하나님의 허용이 없으면 사탄은 하나님께 대적할 수 없습니다. 이 오묘하고, 이 깊은 섭리의 비밀, 하나님의 뜻의 비밀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를 움직이시는 그 자유의지에 오묘한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아모리 왕 시혼 왕이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딱딱하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길을 막고 그들에게 적으로 나타납니다(신 2:30). 이것도, 그 시혼 왕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하나님이라는 거죠. 완고함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거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연단시키셔서 그들이 끝내는 그 길을 통하여 나가게 하시고, 이기게 하시고, 그리고 시혼 왕은 멸망에 이르게 하시죠. 이런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하에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4.4.]

     충성된 사람들의 말을 하나님은 물리치십니다. 나이 든 사람들, 늙은 사람들의 판단도 빼앗으십니다. 욥기 12장 20절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아주 충성된 말을 한다고 해도 그 말이 온전치 않은 것입니다. 아무리 늙은 자들의 판단이 노련하다고 해도 그것도 하나님이 사용하지 아니하시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만민의 우두머리들의 총명을 빼앗게 하시고, 그리고 그들을 길 없는 거친 들에서 방황하게 하신다(욥 12:24; 참조. 시 107:40). 여호와가 “[어찌하여] 우리로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사 63:17). 어떤 때는 우리가 이런 한탄도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마치 밀어내시듯이, 하나님이 마치 우리를 멀리하시듯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택함 받은 백성에게는 끝내 하나님이 돌이킬 길을 내시고 더 나은 길을 내십니다.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출 10:20, 27; 11:10; 14:8) 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말을 듣지 않게 하고, 그러나 끝내 바로를 통하여서 하나님은 많은 것을 베푸는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게 하지 아니하십니까?(출 7:3-4; 4:21) 하나님이 “완강하게”(출 10:1) 하시고 “완고하게”(신 2:30) 하시는 그 적들의 마음도 [사용하셔서,] 결국은 한때는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게 하고 가로막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그 바로의 마음을 사용하셔서, 아모리 왕 시혼의 마음을 사용하셔서, 악한 자들의 마음조차도 움직여서 하나님의 백성을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시고 복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완고하게 하신 여호와가 그 완고한 마음조차도 사용하십니다. 산헤립의 그 무서운 도끼라고 하나님이 부르시지 않았습니까(사 10:15). 산헤립을 도끼로 부르신다. 하나님은 악한 도구도 씁니다. 앗수르의 아주 사악한 군사들도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은 그들 자신에게 속한 일이다. 그들이 죄를 지음으로써 이것 혹은 저것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 나온다. 하나님은 자기가 아시는 바대로 어둠을 나누기도 하신다(quod ipsi peccant, eorum esse; quod peccando hoc vel illud agant, ex virtute Dei esse, tenebras prout visum est dividentis). -아우구스티누스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4.4.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은 그들 자신에게 속한 일이다. 그들이 죄를 지음으로[써] 이것저것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 나온다. 하나님은 자기가 아시는 바대로 어둠을 나누기도 하신다”[라고 말합니다]. 이걸 잘 살펴봐야 됩니다. 죄를 짓는 것은 우리로부터 나옵니다. 죄를 짓는 것은 적들로부터도 나옵니다. 사탄으로부터도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저것을 행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 나온다.” 이 말은 끝내 하나님의 뜻이 없으면 죄조차도 작용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가 아시는 바대로 어둠을 나누기도 하신다, 흑암의 권세도 나누기도 하신다, 악한 세력도 하나님이 사용도 하신다, 그들의 경계도 그들의 지경도 하나님의 수중에 있다, 이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무엇 하나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 없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아닌 것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4.5.]

     사울이 악령에 지펴서 거의 미친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 악령이 여호와께 속하고 여호와로부터 나왔다라고 사무엘서에서는 전하고 있습니다(삼상 16:14; 18:10; 19:9).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에서 온갖 오류와 유혹들이 효과적으로 작용해서 진리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의 거짓이 나타나는데 그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합니다(살후 2:10-11). 우리가 잘 살펴봐야 될 부분들입니다. 하나님은 끝내 자기의 뜻을 이루시고 섭리의 오묘한 비밀을 우리 가운데 알리시지만 감추어진 비밀도 있고 드러나게 하시는 비밀도 있습니다. 어떤 것은 끝까지 하나님이 감추시기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확하게 말씀을 통하여 배우는 것은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통하여 믿는 자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이끄시고 그들을 온전케 하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양육도 하시고, 훈련도 시키신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 믿는 자들의 의지, 자유자의 의지의 영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부분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사람은 필연적으로 죄를 지으나 자원에서 짓습니다. 필연적으로 죄를 짓는다고 해서 마지못해 짓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짓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자유의지가 아니라 노예의지입니다. 의의 종이 아니라 죄의 종의 의지입니다. 타락한 인류는 필연적으로 죄를 짓지만 자원에서 짓는, 그래서 그 죄로 마땅히 멸망에 이르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두 번째, 사람이 사탄의 궤계와 권세 아래에서 악을 행함은 죄의 종이 된 노예의지로 말미암았습니다. 이 노예 의지가 타락한 인류에게 다 주어져 있지만 그 원인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이 자기 자녀를 사탄에게 맡겨 두시는 것은 단순히 허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재난을 통하여서, 욥에게서 보듯이, 훈련시키고 하나님의 자녀를 바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네 번째, 하나님은 유기된 자들의 마음을 거짓과 악에 빠뜨려 완고하고 완악하게 하심으로 그들이 나쁜 도구로서 하나님의 의를 섬기게도 하십니다. 나쁜 도구인 사탄도, 마귀도, 악한 자들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의를 섬기게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55강 결론


  1. 사람은 필연적으로 죄를 지으나 자원해서 짓습니다.
  2. 사람이 사탄의 궤계와 권세 아래서 악을 행함은 죄의 종이 된 노예의지로 말미암으나, 그 원인을 사람 밖에서 찾아서는 안 됩니다.
  3. 하나님이 자기 자녀를 사탄에게 맡겨 두심은 단순 허용이 아니라 재난을 통하여 인내를 훈련시키려는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유기된 자들의 마음을 거짓과 악에 빠뜨려 완고하고 완악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나쁜 도구로서 하나님의 의를 섬기게도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