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강 [3.5.1-10] 보속 교리에서 비롯된 면죄부와 연옥 교리의 허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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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 3.5.1-10. (3권 241-263쪽)



보속 교리에서 비롯된
면죄부와 연옥 교리의 허구성


[『기독교 강요』, 3.5.1.]

     로마 카톨릭이 회개의 세 번째 요소로 주장하는 행위의 보속[이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더라도 형벌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형벌을 갚아야 된다는 이 행위의 보속 교리로부터 ‘면죄부’(indulgentia)와 ‘연옥’(purgatorium) 사상이 나옵니다. 내가 그 형벌을 다 못 갚을 때 그 형벌을 누가 갚아 주느냐, 도와주느냐, 이것이 면죄부의 기원입니다. 로마 카톨릭, 로마 교회가 그것을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로마 교회는 공로의 보고(寶庫)라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사도들과 순교자들과 성자들의 잉여 공로가, 남은 공로가 로마 카톨릭 교회에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교리에 따르면, ‘교회의 보고’(thesaurus ecclesiae) 교리, 보물창고, 로마 카톨릭의 특별히 로마 교회가 말이에요, 로마 교회가 교회의 보물창고다. 그래서 그곳에는 잉여 공로들이 쌓여 있다, 그것을 사제들이 축성기도 하면서 나누어 줘서, 그래서 보속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채워 준다, 이것이 면죄부 교리의 기원입니다. 그 보속을 위하여 교회가 공로를 나눠 주는, 그것을 이제 표를 만들어 가지고 팔게 되는 것, 특별히 십자군 전쟁,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아주 그냥 공공연히 완전 면죄부까지 해 가지고 막 파는 이것이 면죄부입니다. 역사상 면죄부예요. 
     오늘날은 면죄부를 파는, 어떤 지면에 값을 매겨서 파는 것은 없지만, 면죄부 사상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보속 교리가 남아 있는 이상 면죄부 교리는 남아 있는 거예요. 언제든지 보속 교리에 기초해서 또다시 면죄부를 만들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 땅에 살아 있을 때 다 보속을 못했으면 어떡하느냐? 그리고 죽었으면 어떡하느냐? 로마 카톨릭에 따르면, 그들은 천국으로 바로 가지 못합니다. 온전한 보속이 있어야 그리스도의 피가 작용을 한다고 지난 시간에 보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행위의 중재가 있어야 그리스도의 피가 작용을 한다. 그러면 이 땅에서 그 보속을 다 못한 사람은, 그 가운데 죽은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 후손이라도 그들에게 갚아야 되는데, 그것을 위해서 특별히 이제 면죄부가 많이 팔리고, 그러면 그들은 어디에 머물고 있느냐 이 말이에요, 만약에 천국 가지 않았으면. 그것이 연옥 교리입니다. 그래서 보속 사상으로부터 면죄부가 나오고 연옥 사상이 나오는 것입니다. 
     먼저 면죄부를 우리가 잠깐 본다면, 로마 카톨릭은 이 면죄부를 통하여서 그리스도와 순교자들의 공로를 분배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칼빈은 이것을 아예 광증(狂症)이다, 미친 증상이다, 이만큼 강하게 비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순교자의 공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판다는 것이 말이 안 되고, 순교자의 공로는 또 무엇입니까? 순교자에게 무슨 공로가 있습니까? 

자기들의 영혼 구원을 빌미로 수지맞는 장사들이 행해지고 있었다. 구원의 값이 몇 푼 동전으로 산정되었다(quaestuosas nundinationes de animarum suarum salute exerceri; pauculis nummis salutis pretium taxari).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3.5.1.

     ‘영혼 구원을 빌미로 수지 맞는 장사들을 그들이 하고 있고 구원의 값이 몇 푼 동전으로 산정되었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한 괴물들이 날로 더 흥황해지고 방자하고 음탕함에 끝을 보이지 않고, 그러한 괴물이 새로운 납을 내주고 새로운 주화를 뜯어 간다’[라고] 칼빈이 말합니다. 새로운 납이란 말은 뭔가 하면 납으로 주물을 떠서 그것을 가지고 꽝꽝 도장을 찍어서 면죄부로 만드는 걸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주형물을 하나 내주고는 돈을 벌고, ‘면죄부 하나 또 이렇게 만드세요’ 하면서 쿵쿵쿵 찍으면 또 돈을 벌고, 그것을 이야기합니다. 

[『기독교 강요』, 3.5.2.]

     ‘이 면죄부 장사치들’(indulgentiarii). 이렇게 칼빈이 강하게 비판합니다. 사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도 가장 직접적인 동기가 이 면죄부 때문에 있었거든요. 칼빈도 이 면죄부에 대해서 아주 강하게 비판합니다. 그들의 불경건의 원천이 이 면죄부에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그리스도와 사도 베드로와 바울, 순교자들 등에게, 소위 성자라고 불리는 자들, 그들에게 속한 공로들이 교회에 있다, 그래서 ‘교회의 보고’라[고 합니다]. 이 교회의 보고, 이 보물 창고의 근본적인 감독권이 누구에게 있느냐, 로마 주교에게 있다, 이 말이에요. 로마 주교가 오늘날로 교황을 뜻하는 거예요. 로마 주교가 교황입니다. 교황에게, 그의 수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대사(全大赦, indulgentia plenaria, 완전한 면죄부)[가 있고] 또 일부 대사[가 있습니다]. ‘대사’(大赦)라는 말은 죄를 사한다는 것이거든요. 이건 완전 면죄부라고도 해요. 완전 면죄부, 이것은 이 면죄부 하나 사면 모든 죄를 다 사해 주는 거예요. 나중에 극단적으로는 미래의 죄까지 다 사해 주는 거예요.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그리고 이런 것은 교황이 만들고, 100일을 사면하는 것은 추기경, 100일 동안 사면해 주는 것은 추기경이 만들고, 40일 사면해 주는 것은 일반 주교들이 만들고, 이러한 해괴한 것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피를 오염시키는 것이고 사탄이 조롱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죄 사함과 화목과 무름에 충분하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율법과 모든 선지자들은 그리스도를 증언하되 다 그를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라고 사도행전 10장 43절에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피가 우리의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요한일서 1장 7절에 말했는데, 그들은 베드로와 바울과 순교자들에게 죄 사함의 권세가 있다고 부여해 줍니다. 면죄부는 순교자들의 피가 죄를 씻는 그 권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음으로 그가 우리의 의가 된다고 말합니다(고후 5:21). 면죄부는 죄의 보속이란 것을 내세워서 순교자들의 피를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셨다고 외칩니다(고전 1:13). 면죄부를 파는 그들은 바울과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위하여 죽었다고 선포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가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사도행전 20장 28절에 사도 바울의 말씀을 받습니다. 바울이, 베드로가 어찌 우리를 위한 공로가 되겠습니까? 면죄부는 순교자들의 피가 죄 사함을 받는 또 다른 값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거룩하게 한 자들을 단번에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다, 히브리서 10장[14절]에 나오는 것입니다. 단번에 영원히 온전하게 했습니다. 다 지불하신 것입니다. 면죄부는 성화는 순교자들에 의해서 완성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모든 성도들은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었다고 요한계시록 7장 14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면죄부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오염시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3.5.3.]

     로마 주교 레오(Leo)는, 초대 교회의 레오입니다, 이 레오는 면죄부, 이런 걸 거부했습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로마 카톨릭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자꾸 교권화되고, 로마 카톨릭이 세력화되면서 만들어낸 그들의 자의적인 창작품입니다. 

우리는 형제로서 우리 형제를 위하여 죽지만 어떤 순교자의 피도 죄 사함을 위하여 흘리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이를 행하셨다. 그가 자기의 피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가 그를 흉내 내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뻐하며 누리게 하려 하심이다(etsi fratres, … pro fratribus morimur, nullius tamen sanguis martyris in peccatorum remissionem funditur, quod fecit Christus pro nobis; neque in hoc quod imitaremur, sed quod gratularemur contulit nobis).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3.5.3.

     아우구스티누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의 피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흉내 내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기뻐하며 누리게 하려 함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흉내 내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흉내 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흉내 내서 되겠습니까? 누려야 되겠죠. 예수 그리스도의 의밖에 없죠. 십자가를 어떻게 면죄부로 흉내 낼 수 있겠어요. 이 면죄부의 장사치들은 순교자들에게 아주 많은 공로가 있어서 잉여 공로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잉여 공로가 있어서 그들은 그 잉여 공로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섞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으로는 아니고 순교자들의 피를 섞어서 구원이 온전해진다, 아니면 순교자들의 피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작용한다, 이런 궤변을 늘어 놓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외에 어찌 공로가 있겠습니까? 

[『기독교 강요』, 3.4.4-5.]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고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이야기했을 때(골 1:24),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증언하는 교회의 사도 된 바울의 그 일, 복음 증거의 말씀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무름과 속죄를 대신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디모데후서에서 이야기했습니다(딤후 2:10). 바울이 고난을 받는 것이 우리를 위한 의를 위함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게 하려 하는 것이죠. 사도 바울이 고생을 많이 했고, 사도 바울이 수고를 많이 해서, 혼자 자기 자신의 구원을 넘어서는 공로가 있었다, 그 남은 공로는 교회에 보존되어 있다, 그 교회에 보존된 사도 바울의 공로로 우리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바울의 그 공로를 섞어서 온전해진다, 그 순교의 피를 섞어서 온전해진다, 이것이 로마 카톨릭의 사상인 것이죠. 이것은 비기독교적이고 이교적이고 이단이고 전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죠. 

그리스도의 고난은 머리라는 점에 있어서는 그리스도 안에만 있고 전체 몸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 있다. 이러하므로 바울은 한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말한다(Passiones, … Christi in solo Christo, ut in capite; in Christo et ecclesia, ut in toto corpore: unde dicit membrum unum Paulus, suppleo in corpore meo quod deest passionibus Christi). -아우구스티누스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3.5.4.

     아우스티누스는 ‘그리스도의 고난은 머리라는 점에 있어서 그리스도 안에만 있고 전체 몸이라는 점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있다’고 이렇게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머리라는 점에서는 그에게만 있고 전체 몸이라는 점에서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 있다.’ 한마디로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하신 의이고, 머리고, 우리를 위한 생명의 양식이고, 그의 피가 우리의 구원의 값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교제 가운데서, 사도가 증언하듯이, 그의 의를 우리 것 삼아 주심으로 온전히 죄 사함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 그리스도의 무름, 이것은 어떤 속죄의 보속으로써, 그리하여 면죄부로써 그것이 하나도 더해질 수도 없다는 것을, 또 섞일 수도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기독교 강요』, 3.5.6.]

     이와 함께 연옥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옥도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무관하고, 칼빈은 ‘사탄의 계교로 조작된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연옥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고 우리의 믿음을 전복시키고 파괴하는 사탄의 치명적인 허구라는 것입니다. 연옥 사상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면죄부와 취지가 똑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믿어 가지고 구원에 이르러서 천국 간다, 이게 우리의 믿는 바인데, 로마 카톨릭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으로는 아니고 보속의 공로가 있어야 되는데, 그 공로를 다 채우지 못한 사람은 연옥에 가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 자손이나 후손이 보속을 하고, 면죄부를 사든지 해서 보속을 하면, 그때 천국 간다는 거죠. 이것이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것이죠. 

오직 그리스도의 피가 신자들의 죄를 위한 유일한 무름, 유일한 속죄, 유일한 정화(淨化)이다(Christi sanguinem unicam esse pro fidelium peccatis satisfactionem, expiationem, purgationem).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3.5.6.

     ‘오직 그리스도의 피가 신자들을 위한 유일한 무름이고, 유일한 속죄고, 유일한 정화다,’ 칼빈은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유일하게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옥은 그리스도에 대한 모독이고, 그리고 전혀 그리스도에 대한 해괴한 궤변이죠. 불경건한 샘이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강요』, 3.5.7.]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는데(마 12:31; 막 3:28-29; 눅 12:10), 이 땅에서 구원받지 못한 것이 어찌 사후에 구원을 받습니까? 그러니까 믿는 것도 이 땅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우리의 구원도 이 땅에서 일어나는 거죠. 인 침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인 침이 연옥에서 일어납니까? 사후에 일어납니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칼빈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강요』, 3.5.8.]

     연옥이라는 것이, 마카비서 이런 것을 인용하지만, 성경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칼빈은 정확하게 또한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마카비서는 성경의 목록에 속하지 않는다고 칼빈은 단언합니다. [마카비서는] 거룩한 책들의 목록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3.5.9.]

     그리고 성도들의 공적을 시험하는 그 불은 연옥의 불이 아니라 성령이다. ‘각 사람의 공적대로 나타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연옥에[서] 불이 타서 어떤 사람은 드러나고 어떤 사람은 태우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우리에게 그것이 온전히 드러난다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연옥에 대해서는, 크게, 길게 칼빈도 설명하지 않습니다마는, 크게 우리가 말할 바가 아니죠. 하나님의 말씀에 금과 같은 순수함을 연옥이라는 오물로 해친다. 이것이 로마 카톨릭의 공로주의, 형식주의, 그리고 성례주의, 이런 것들이 다 하나로 묶여 있는 그런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게 보속 교리고, 그것으로부터 면죄부가 나왔고 연옥 사상이 나왔습니다. 

[『기독교 강요』, 3.5.10.]

     이제 마지막 부분에 칼빈이 언급하고 있는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 소위 사자들을 위한 기도, 이것은 성경에 도무지 예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에서부터도 이것을,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로마 카톨릭이 연옥 사상을 이야기하면서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 이것은 전혀 비성경적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복이 있다,’ 이렇게 이야기해서 의인과 악인, 또 택함 받은 자들과 택함 받지 못한 자들, 이러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그것의 어떤 제3지대를 두고, 그리고 죽은 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서 그들을 연옥으로부터 천국으로 옮기고 하는 이러한 것은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율법과 복음에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의 자유를 제안하는 것은 한마디도 없다고 칼빈은 단언하고 있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육체의 부활과 영원한 영광이 모든 사람에 의해서 대망되지만, 누구든 죽을 때 자격을 갖춘 자에게만 안식이 따른다[고] 정확하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죽는 순간 천국 가거나 지옥 가는 것이지, 무슨 제3지대에서 또 다른 어떤 공로를 기다리면서 그곳에서 다시 천국 가고 지옥 가는 것이 결정되는 이러한 궤변은 전혀 이교의 어떤 신화적인 습속에서 나온 것이지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론]

     이제 이 부분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로마 카톨릭의 보속 교리로부터 면죄부와 연옥 사상이 흘러나왔습니다. 
     [둘째,] 로마 카톨릭은 그리스도와 사도 베드로와 바울과 순교자들에게 속한 공로들을 교회의 보고, 곧 보물 창고라고 칭하고, 그 은총을 분배하는 권한이 로마 주교, 곧 교황에게 있다고 주장합니다. 
     셋째,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에 영원히 드려진 온전한 피의 제사 외에 다른 공로를 섞는 것은 불경건, 모독, 사탄의 조롱입니다. 
     넷째, 죽은 자가 그리스도의 공로 외의 공로로 채움 받아 천국에 간다는 연옥 사상과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는 전혀 성경적 근거가 없습니다.



110강 결론


  1. 로마 가톨릭의 보속 교리로부터 면죄부와 연옥 사상이 흘러나옵니다.
  2. 로마 가톨릭은 그리스도와 사도 베드로와 바울과 순교자들에게 속한 공로들을 교회의 보고(寶庫)라 칭하고 그 은총을 분배하는 권한이 로마 주교(교황)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3.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에 영원히 드려진 온전한 피의 제사 외에 다른 공로를 섞는 것은 불경건, 모독, 사탄의 조롱입니다. 
  4. 죽은 자가 그리스도의 공로 외의 공로로 채움 받아 천국에 간다는 연옥 사상과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는 전혀 성경적 근거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