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강 [3.2.33-40] 성령의 말씀 조명과 인 침에 따른 믿음의 확실성과 확신과 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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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 3.2.33-40. (3권 102-113페이지)



성령의 말씀 조명과 인 침에 따른
믿음의 확실성과 확신과 평정


     우리가 지금 계속 나누는 믿음, 참 은혜롭죠? 선물로 믿음이 주어지고, 또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고, 얼마나 감사합니까? 믿음이 선물로 주어지고, 또 보혜사 성령이 임하여서, (그 보혜사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시고), 그 영이 임하여서 그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그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그리스도 내 안에 살고, 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살고, 그리고 믿음으로 누리는 내 생명을 누리고, 내 생활을 누리고, 그게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성령의 임재와 함께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죠. 성령이 임하면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래서 믿음의 제1요소가 지식이다, 가장 그것을 칼빈은 강조하는데, 결국은 말씀을 믿는 거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고. 말씀의 실체, 신구약의 실체가 그리스도시니까. 그런데 그 믿음의 역사, 그 믿음의 역사 우리가 믿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고, 믿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 믿음의 역사는 성령이 우리에게 말씀을 비추어 주고, 그리고 성령이 그 말씀을 우리에게 감동시켜 줘야 우리에게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독교 강요』, 3.2.33.]

     그래서 성령의 ‘조명’(illuminatio)이 없이는, 성령의 ‘감화’(persuasio)가 없이는, 믿음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조명, 성령이 비추는 것, [곧] 조명이라는 말은 빛이 떨어지는 거예요. 감화라는 것은 빛이 들어오는 것이고, 안으로. 사실 동시에 일어납니다, 조명과 감화가. 그런데 이 성령의 조명은 말씀이 떨어지고, 그다음에 감화는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 수납하는 것[은] 조명과 감화거든요. 조명은 ‘수’(受)고 감화는 ‘납’(納)이라고 해도 되는데, 굳이 나눈다면 이 수납이 동시에 일어나요, 성령의 역사로. 

마음 역시 성령으로 강화되고 지탱되지 않는 한, 정신이 성령으로 조명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Nec satis fuerit mentem esse Dei spiritu illuminatam, nisi et eius virtute cor obfirmetur ac fulciatur).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3.2.33.

     그래서 이 믿음은 우리의 마음에 역사합니다. 이 말은 뭔가 하면 우리 내적으로 우리 영혼에 말씀이 역사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안에서 깨끗하게, 그동안 잘못된 오류와 거짓된 것을 다 지워 내고 하나님의 순수한 진리를 맛볼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의, 우리 안에서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singulare Dei donum)로서 우리에게 주어지고, 하나님이 믿음의 저자이고 원인인데, 이 하나님, 특별히 삼위일체 성령 하나님[이 그러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는 뜻하시고, 아들은 말씀 자체시고, 성령이 말씀의 작용, 역사, 효과, 능력이잖아요. 그래서 믿음은 그 저자(autor)이고 원인(causa)이신 성령의 효과(effectus)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성령이 믿음의 효과다(갈 3:2). [즉] 우리 안에서 성령의 역사하는 것이 전부 믿음의 효과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이 역사하는 것은 전부 믿음의 효과고, 달리 말하면 믿음이 우리 안에 작용하는 것은 역시 전부 성령의 효과고. 그렇기 때문에 성령이 우리 안에서 작용할 때, 그때 믿음이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무엇과 더불어? 말씀과 함께 역사한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말씀과 성령은 항상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3.2.34.]

     영으로 영을 분별한다고 했는데(고전 2:13-14), 이때 우리 마음 속의 영이 하나님의 영을 분별한다고 할 때, 그 연결 고리는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우리 속사람을 새롭게 하고 우리의 심정을 감동·감화시켜 줘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영혼이 받아들이게끔, 수납하게끔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라도” 우리 안에 통달하게 하신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 말씀한 거예요. 이 성령이 모든 것을 우리 안에 통달하게 할 때, 그때 작용하는 게 뭐냐? 그 도구가 뭐냐? 믿음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믿음이 같이 역사한다, 이 말에요. 우리가 바늘로 이렇게 땀을 해서 꿰매잖아요. 그래서 제가 꿰매죠. 그러나 바늘로 꿰매잖아요. 마찬가지예요. 성령이 역사하는데, 믿음으로 역사한단 말이에요. 성령이 믿음으로 역사해서, 그래서 ‘우리의 깊은 것, 깊은 것까지라도 하나님이 역사해서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기까지 한다’라고 이렇게 말씀해요.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 고린도전서 2장 16절, 혹은 그리스도의 심장(마음)을 가졌다, 그렇게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에 이끄심을 받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리스도께 나아갈 자 없고(요 6:44), 그리스도를 알 자 없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자가 없습니다. 

성령이 내적 교사로서 그 조명을 통해 입구를 마련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지식은 우리의 정신에 파고들 수가 없다(proinde in mentem penetrare nequit, nisi interiore illo magistro spiritu per suam illuminationem aditum faciente).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3.2.34.

     성령이 우리 안에 하나님의 계심과 또 그리스도와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어떠하심과 뜻을 알게 하는 “내적 교사”(magister interior)라고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의 내적 교사로서 그 조명을 통해 입구를 마련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지식은 우리의 정신에 파고들 수 없다,’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 강요』, 3.2.35.]

     지금 여기서 성령을 주제로 다룬다고 갑자기 성령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칼빈이. 이게 곧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믿음이 작용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믿음의 문이 열리고, 그래서 우리의 이 만세 반석과 같은, 이 모진 돌과 같은 마음이 살과 같은 마음으로 변화가 되는 거죠. 그때 이제 믿는 거예요, 우리가. 그래서 깊은 것,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우리가 통달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4장 13절에서 그것을 바로 “믿음의 마음”(spiritus fidei)이라고 이렇게 부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이 역사해서, 조명해서, 감화해서 우리 안에. 성령의 감화는 본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거예요, 우리 안에. 그래서 변화를 일으키고 열어젖히고 받아들이게 하는 그것이 바로 믿음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거듭난 마음이겠죠. 
     이 믿음의 마음을 우리에게 주셔서 모든 선을 기뻐하고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한다(살후 1:11)[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말씀이 떨어지고, 자라고, 그 믿음의 역사가 성령의 조명과 감화로, 비추고 드리고 하는 그 성령의 조명·감화로 우리 안에 역사한다, 그래서 내적인 인(印, sigillum) 치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 치심이. 인 친다는 도장을 꽉 찍는다는 거예요. 성령의 불로 확 화인을 찍듯이 우리 안에 확 찍어 주면, 우리 마음이 성령의 역사로 부드러워지고, 옥토가 되고, 그리고 가르칠 만하게 되고, [곧] 받아들일 만하게 되고, 말랑말랑해지고, 썩어지고, 아스팔트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썩어지고, 그래서 성령과 함께 믿음의 도구가 주어지고, 그와 함께 썩지 않는 말씀의 씨가 함께 우리 안에 들어오고, 그래서 지식의 역사,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그 마음이 바로 믿음의 마음이다, 칼빈은 여기서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우리가 믿는 것이 공로에 속한 것이 아니라 은사에 속한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치시려고 우리의 구세주는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적용. 요 6:44)라고,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 내게 올 수 없다’(요 6:65)라고 말씀하신다(servator doceret ipsum quoque credere doni esse, non meriti. Nemo, inquit, venit ad me nisi pater meus traxerit eum, et cui datum fuerit a patre meo [Ioann. 6, 44]). -아우구스티누스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3.2.35.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가 믿는 것은 공로에 속한 것이 아니라 은사에 속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라는 말씀,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였으면 내게 올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부여[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오게 하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오게 하신 자만 구원을 얻는다, 이것이 바로 선택입니다. 선택, 어떻게 선택한 거예요? 바로 아들과 함께 자녀로서 선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예수께 오라[고] 한 자들만 하나님께 나아갈 것이요’라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칼빈은 “십자가의 깊이”(profundum crucis)라는 말을 써요. ‘십자가의 깊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 나아가게 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에 함께 못 박히고, 그리고 함께 살고, 이런 것이 전부 다 믿음이라는 거예요, 믿음. 그리스도를 알고, 십자가를 밝히 바라보고, 십자가를 인정하고, 십자가를 미련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구원의 도로 삼고, 그것이 전부 다 믿음 가운데 우리 안에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성령 자신의 능력으로 우리를 조명하셔서 우리가 믿음에 이르도록 하시는 동시에 그 자신의 몸에 우리를 접붙이셔서 우리가 모든 선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게 하신다(Christum, ubi nos in fidem illuminat spiritus sui virtute, simul inserere in corpus suum, ut fiamus bonorum omnium participes).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3.2.35.

여기서 보혜사 성령이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해 주시는 그리스도의 영이시라는 점과 그 의의 전가가 곧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점이 천명됩니다.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3.2.35, 각주 180.

     ‘그리스도는 성령 자신의 능력으로 우리를 조명하셔서 우리가 믿음에 이르도록 하시는 동시에 그 자신의 몸에 우리를 접붙이셔서 우리가 모든 선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게 하신다,’ 이렇게 칼빈이 이야기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것은 모든 의에 동참하게 하는, 모든 그리스도의 의를 누리게 하는, 생명도 누리고 생활도 누리고,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거예요. ‘그것은 십자가의 깊이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 그 ‘도’는 말씀이란 뜻이에요. ‘로고스 스타우루’(λόγος σταυροῦ), 십자가의 도,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그리고 십자가가 “밝히 보이거늘,” 갈라디아서 3장 1절에. 이 ‘십자가의 깊이,’ 이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연합한다는 게 뭘까요? 그의 의를 내 의 삼아 주시고, 그가 가르치고 그가 행한 것을 다 알게 하시고, 그가 내 안에 있는 것, 그러니까 그와 함께 아버지가 계신 것도 내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이 모든 것을 우리가 알게 하시고, 이런 것이 바로 믿음의 역사라는 거죠. 이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강요』, 3.2.36.]

     그래서 성령이 임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 자녀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자녀가 되고, 예수를 알고, 예수가 행하시고 예수님이 뜻하시고 예수님이 이루신 것을 우리가 다 누린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성령의 조명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있을 때, 성령의 비추심, 이것이 우리에게 있을 때, 모든 것이 확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령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게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거든요.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침을 받고 기업의 보증이 된다’(엡 1:13-14)는 말은, ‘기업’(基業)이란 말은 바로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누리는 것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자녀이고 상속자로서 누리는, 그래서 성령은 “약속의 영”(spiritus promissionis)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역시 ‘약속의 영’이라는 말은 바로 믿음의 영이라, 이 말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서 약속의 성취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약속은 우리가 지난 시간에 상세히 다루었습니다. 바로 믿음의 기초요 목적이 약속이라고 했잖아요, 그 약속이 그리스도라고 했잖아요. 그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임하는 영이니까 성령이에요. 그래서 성령은 약속의 영인데, 그 성령이 약속의 영으로[서 그 영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임한다는 게 바로 믿음이라는 거예요, 믿음. 그래서 믿음으로 그리스도가 내게 임하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고, 그리스도의 의를 누리고, 그리스도를 닮아 가고,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고,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깊이’다[라고] 아까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에게 인 치고 보증(arrhabo)으로[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고, 그래서 성령의 보증이 우리에게 있다, 이 말이 곧 믿음의 보증이다, 이 말이에요. 성령의 보증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3.2.37.]

     그러므로 우리에게 믿음이 주어지면 이 믿음은 끝없이 계속된다, 이 말이에요. 떠나가지 않는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떨지 말고 내게 있는 믿음을 헤아려 보고 그 믿음대로 살아라, 이 말이에요. 그 믿음을 겨자씨만큼이라도 사용하면서 살아라, 그래서 평정을 누려라, 이 말이에요. 다시 평정이 나옵니다. 믿음의 파생적인 요소라고 했잖아요. 믿음에는 꼭 이 평정이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라틴어로 ‘securitas’라고 합니다, ‘평정’이란 단어는. 전체적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고,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에게 예배 드리고, 그의 말씀을 내려받고 예배를 올려드리고, (경건이거든요) 이런 모든 모습들, 오래 참고 기다리고,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이 총체적인 것이 바로 평정이거든요. 이 평정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를 붙으심이[로]다”(시 3:5). 이것이 평정이란 말이에요. 이게 믿음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너희의 힘이 소망과 잠잠함 가운데 있을 것이요’(사 30:15). 평정과 함께 뭐가 아까 따른다고 했습니까, 제가? 잠잠함이 따라요. 그러니까 믿음이 우리에게 있으면요 평화가 있고, 곧 화평, 평화, 평화가 있고, 잠잠함이 있어요. 그리고 오래 참음이 있어요. 그리고 사랑의 열매를 맺어요. 이것을 다 합해서 우리는 평정이라고 해요. 쉴 만한 물가로 우리를 이끄시는 그 평정함[입니다]. 

[『기독교 강요』, 3.2.38.]

     그래서 믿음의 세계는 어떠한 도덕적 추론이나 이성적 가치판단이 아닙니다. 믿음은 의지하는 것이고, 의뢰하는 것이고, 간구하는 것이고, 소원하는 것이고, 맡기는 것이고, 바로 은혜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도덕적 추론에 세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중세에 로마 가톨릭이 한 거예요. 

[『기독교 강요』, 3.2.39.]

     그래서 우리 안에 임하시는 그분이 누구시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9절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칼빈은 이제 “그리스도의 영”(spiritus Christi)을 강조합니다. 말씀의 영, 지식의 영, 그 말씀이 바로 그리스도니까 [그러합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롬 10:10) 그 고백과 확신의 성령, 그게 믿음의 말씀, 그게 로마서 10장이 나오잖아요. 그 믿음의 말씀이 곧 그리스도를 믿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보혜사 성령이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그리스도의 의를 내 것[으로] 삼게 하는, 누리게 하는 그 영이기 때문에, 신약 시대[의] 보혜사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칼빈은 여기에서 아주 수사학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이들은 오직 성령만이 우리에게 자녀임을 증언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 성령이 없으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없고, 근데 이 성령이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자녀가 되고,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가 되[게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으로 이끌림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종들이 아니다, 곧 그리스도의 것들이 아니다[라고] 로마서 8장 9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이렇게 요한일서 3장 24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믿음은 보혜사 성령의 임재로, 불가항력적 은혜로 주어지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요, 그래서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요,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자녀 되고 상속자 된다는 것이요,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이기고, 세상은 이 믿음을 알지 못해요. 이 믿음은 오직 은밀한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그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믿음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에게 머무는 자에게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3.2.40.]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끝까지 하나님이 지키시는 믿음, 그래서 성도의 끝까지 참는 것은 끝까지 하나님이 끌고 가심인데, 그게 견인(堅忍, perseverantia)인데, 그것은 바로 믿음의 견인이라[는 것입니다]. 믿는 가운데 우리가 오래 참고 끝까지 끝내 이기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5장 6절에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결론]

     이제 이 부분 한번 정리해 볼까요? 
     첫째로 믿음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로서 그 저자이자 원인이신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서 성도들이 진리를 알고 진리 안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 성령, 믿음[은] 항상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가 빠뜨리지 않아야 될 것은 뭐예요?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 성령, 믿음,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성령이 내적 교사로서 인 쳐 주셔서 믿음의 마음을 주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아는 어떤 지식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그냥 꽉 화인을 찍어 줍니다. 나쁜 화인이 아니라 좋은 화인, 바로 인 치심[입니다]. 성령의 불로써 우리 안에 인 치심[입니다]. 인 치심이 믿음과 고백과 아멘과 다 한꺼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믿음의 말씀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그에게 접붙임 받아 거룩한 지식을 얻게 되면 동시에 그의 선에도 동참하게 됩니다. 그래서 생명으로만 구원받는 게 아니라 생활로 날마다 거룩해지는, 동시에 다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써 살아나고 살아가고.
     네 번째, 성령의 조명으로 말씀을 믿는 역사는 약속과 성취를 인 침과 보증과 확증에 미친다[는 것입니다]. 인 쳐 주시고, 보증해 주시고, 확증해 주신다는 것이에요, 믿음으로써.
     다섯 번째, 믿음으로써 역사하는 구원의 은혜는 자녀로서의 신분과 삶 전체에 미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직 그리스도의 영의 임재로 말미암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 때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지금은 희미하게 보나 마주 보고, 끝내 그리스도와 온전한 하나 됨, 그게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우리의 지극한 복입니다. 



101강 결론


  1. 믿음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로서, 그 저자이자 원인이신 성령의 역사로써, 성도들이 진리를 알고 진리 안에 서게 합니다.
  2. 성령이 내적 교사로서 인치셔서 믿음의 마음을 주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아는 그 어떤 지식도 얻을 수 없습니다.
  3. 믿음의 말씀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그에게 접붙임 받아 거룩한 지식을 얻게 되면 동시에 그의 선에도 동참하게 됩니다.
  4. 성령의 조명으로 말씀을 믿는 역사는 그 약속과 성취를 인침과 보증과 확정에 미칩니다.
  5. 믿음으로써 역사하는 구원의 은혜는 자녀로서의 신분과 삶 전체에 미치는 바, 이는 오직 그리스도의 영의 임재로 말미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