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강 [2.17.3-6]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와 그 의의 전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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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 2.17.3-6 (2권 502-508페이지)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와
그 의의 전가 가치


     기독교 교리에 있어서 구원의 네 가지 원인 혹은 영생의 네 가지 원인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번에 보았듯이 칼빈은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는] 이 말씀을 통하여서, 첫째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것이 영생의 동기 혹은 동력이라고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동기인 혹은 동력인이라고 하는데요. 하나님의 사랑이 그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 뜻, 그가 무조건적 기뻐하심에 따라서 택함 받은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하셨다, 영생을 주시고자 하셨다, 그 뜻이 첫 번째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료인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구원의 값, 의, 공로가 무엇이냐, 그것은 그리스도의 순종이다, 혹은 그리스도 자신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가] 동력인[이고],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이 질료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구원의 원인 혹은 영생의 원인[입니다].
     세 번째는 형상인 혹은 도구인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아들을 주셨는데, 무엇으로 그 의를, 값을 우리 것[으로] 삼게 되느냐[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그래서 믿음으로 그것을 우리 것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의, 공로를 담는 그릇 혹은 담는 망, 그 도구, 형상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 번째입니다. 
     네 번째는 요한복음 3장 16절에는 직접 나오지 않지만 이 모든 것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다[라고 합니다]. 이것을 목적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구원의 네 가지 원인 혹은 영생의 네 가지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동력인은 하나님의 사랑, 질료인은 그리스도 혹은 그리스도의 의, 공로, 값, 순종, 그리고 도구인 혹은 형상인은 믿음, 그리고 목적인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네 가지의 원인에서 우리 인간의 행위나 공로나 자질은 그 어디에도 개입할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모든 원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고, 하나님에게서 시작되고, 하나님에서 끝이 나는, 전적 하나님의 열심 가운데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개혁신학자들, 정통신학자들이 말하는 구원의 네 가지 원인 혹은 영생의 네 가지 원인이라는 교리입니다. 

[『기독교 강요』, 2.17.3.]

     이제 2권의 마지막 속죄론을 다루는 그 17장의 후반부에서 칼빈은 질료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순종, 의, 값, 그것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하게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리스도가 우리의 죗값을 무르셨다면, 만약 우리가 진 벌금을 다 지불하셨다면, 만약 자기의 순종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누그러뜨리셨다면, 한마디로, 만약 의로운 자로서 그가 불의한 자들을 위해 고난을 당하셨다면, 우리의 구원은 그의 의로 말미암아 태어난 것이며, 꼭 그만큼 유효하고, 그만큼 공로가 있다(si pro peccatis nostris Christus satisfecit, si poenam nobis debitam persolvit, si obedientia sua Deum placavit, denique si iustus pro iniustis passus est, iustitia eius partam nobis salutem; quod tantundem valet ac promereri).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17.3.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신을 주시므로, 그 자신의 공로로[써]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그 자리를 마련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죄 값을 무르셨습니다. 그가 형벌의 모든 값을 치르셨습니다. 예수님의 의로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부드럽게 되셨습니다. 그의 진노를 누그러뜨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태어난 것이고, 그의 의만큼 유효하고, 그의 의만큼 공로가 있다라고 칼빈은 강조합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롬 5:10-11). 그는 아들입니다. 아버지와 한 분이십니다. 그 아들이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사람의 아들로 오셔서 죽으셨으므로 그 아들로 말미암아, 그 아들의 공로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습니다(롬 5:19).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류가 원죄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심으로 그를 믿는 자,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여김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멸망에 속하게 된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여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점에서 의인이 되었습니다. 의인이 되었다 하는 것은 의로 여김을 받았다는 뜻이겠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의를] 우리 것으로[서] 삼으심으로[써] 그 은혜의 값으로[써], 선물로[써], 곧 은사로[써], 우리가 많은 범죄에서 속함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습니다(롬 5:16).

[『기독교 강요』, 2.17.4.]

그리스도의 공로로부터 우리를 위한 은혜가 태어났다(Christi merito partam nobis esse gratiam).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17.4.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공로로부터 은혜가 태어납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없으면, 그의 순종이 없으면 은혜가 역사할 수 없습니다. 그의 피가 있으므로 우리가 정결하게 되었고(요일 1:7), 그의 죽음이 있으므로 우리의 죄가 속량되었습니다. 그의 피는 죄 사함을 얻기 위한 대속의 피입니다(마 26:28; 눅 22:20). 피 흘림이 없이 죄 사함이 없고(히 9:22),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림이 없이는 우리가 심판에서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정죄의 심판을 당하여 모두 멸망의 형벌, 영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우리가 심판에서조차도 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셨다는 것이죠. 그래서 세례 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구약에 예언된 그 하나님의 어린 양, 그 양의 피를 보고 생명이 속함 받고 죽음이 유월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유월절 양, 그의 피로 불법이 속하여지고 죄가 지워지고 면죄되는 그러한 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레 34:7; 레 16:34). 
     예수 그리스도는 단번에 영원히 온전한 제물로 자기 자신을 드리셨습니다(히 9:26). 소와 양으로 드리는 그러한 예표적 제사가 아니라 실체적 제사이므로, 예수님의 제사는 두 번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단회적이나 일시적이지 않고 영원합니다. 단번에 영원히 드려지신 것입니다. 그것은 불완전한 것이 아니요, 완전한 것입니다. 단번에 영원히 이루셨고, 온전히 이루신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온전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고, 그 희생제물(sacrificium)이 우리를 속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용서를 베푸는 값이 되고, 우리의 모든 것을 되사하는 값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제물에 속죄하고, 유화시키고, 값을 무르는 힘(vim expiandi, placandi et satisfaciendi)이 있다.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17.4.

     그리하여 칼빈은 “그리스도의 희생제물에 속죄하고, 유화시키고, 값을 무르는 힘이 있다”라고 이렇게 강하게 이야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자십니다. 그가 [언약의] 실체십니다. 그가 자기 자신을 아버지께 드리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값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가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기업이 되게 하셨습니다(히 9:15). 
     우리는 영원히 저주 가운데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빚진 것[의 값]을 치르셨습니다. 우리의 형벌의 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그가 징계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그가 살을 찢기시고, 그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그의 살이 빻아지고, 못 박히고, 그리하여 우리가 나음을 얻게 되었습니다(사 53:5).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한 값을 치르지 아니하셨으면, 우리의 죄 값을 무르지 아니하셨으면, 우리는 그 누구도 구원에 이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정죄받고 저주 가운데 형벌의 죽음을 [겪]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형벌을 면하고 저주가 풀리고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17.5.]

그리스도가 우리를 죽음의 죄책에서 구속하시기 위해 그 값을 지불하셨다(pretium solvisse, quo nos a reatu mortis redimeret).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17.5.

     예수 그리스도는 죄책에서 우리를 무르셨어요. 죄의 값, 형벌에서 우리를 사셨어요. 그가 화목제물로[서](롬 3:25) 구속의 값으로[써](롬 3:24),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과 같은 보배로운 피로[써]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벧전 1:18-19). 죄를 위한 무름이 되셨습니다. 그의 값으로 우리를 사신 것입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므로(고전 6:20) 우리는 허망한 것, 헛된 것에 마음을 쏟아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그의 피의 복음 외에, 십자가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이 없습니다.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은 다 거짓 복음이요, 변질된 복음이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자신을 대속물로 주시는 것(딤전 2:5-6), 그의 피로 말미암은 구원의 역사, 죄의 사함, 이것이 유일한 구원의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율법의 요구를 다 지킬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그 율법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을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찾아야 한다. 혹은 동일한 말이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결국 취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율법 가운데 우리의 행위를 통하여 약속하신 무엇이다(a Christo petendum esse, quod lex conferret si quis eam impleat; vel (quod idem est) nos consequi per Christi gratiam quod Deus operibus nostris in lege promisit).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17.5.

     그리스도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의 전적인 은혜, 오직 은혜로 우리가 율법 가운데 명령된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저주이나, 아무도 하나라도 온전하게 지켜 구원에 이를 자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의를 이루셨습니다. 그가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율법을 행하면 살리라’(레 18:5)는 그 하나님의 명령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수행하여 다 이루셨으므로, 그를 믿는 자는 구원의 의를 얻게 됩니다. 
     예수님이 율법 아래에 나셔서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셨습니다(갈 4:4-5). 이제는 [신자가] 율법의 저주 가운데 놓여 있지 않습니다. 이제는 율법을 즐거워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이 전혀 우리의 행위와 무관하게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행위가 없는 의의 전가”(iustitiae imputatio sine operibus), 일한 것이 없이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들의 복을 우리가 누리게 된 것입니다(롬 4장). 그리스도의 의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그의 의만이 대속의 값이 됩니다. 

확실히 그리스도의 육체가 우리의 양식이라고 불리는(요 6:55) 다름 아닌 한 가지 이유는 우리가 그 안에서 생명의 실체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부연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를 위한 의의 값이 되셨다는 사실로부터가 아니면 어디로부터도 이러한 힘이 솟아나지 않는다(Nec certe alia de causa vocatur caro Christi cibus noster (Ioann. 6, 55), nisi quia in eo reperimus vitae substantiam. Ea porro vis non aliunde provenit, nisi quia in iustitiae nostrae pretium crucifixus fuit Dei filius).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17.5.

     그의 육체가 우리의 양식입니다. 그의 살이 신령한 양식이고, 그의 피가 신령한 음료입니다. 오직 예수의 몸이 생명의 실체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리신, 그가 치르신 형벌이 유일한 대속의 의의 값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드리셨습니다(엡 5:2). 그가 우리의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그 결과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가 죽고, 죽음을 죽이시는 부활의 권능으로 다시 사셨으므로, 우리가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살게 되었습니다(롬 4:25). 
     예수의 이름 외에는 그 무엇으로도 구원에 이를 자 없습니다. 그의 이름으로 우리 죄가 사함[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역사합니다. 죽음은 예수 가운데 있지만 그 죽음은, 예수의 죽음은 죽음을 죽이는 부활의 죽음이기 때문에, 영생에 이르는 생명의 역사를 이루는 대속의 죽음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주신 그 죽음, 그 고난, 그것을 우리는 믿어서 대속의 의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17.6.]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모든 의를 다 이루셨습니다. 우리의 어떤 협력도, 우리의 어떤 보조도, 보충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뜻하시고 친히 이루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 가운데 아들이 이루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세 전의 작정 가운데 아들이 대속의 주로 정하여지셔서 그 아들이 때가 찬 경륜을 좇아 이 땅의 사람의 아들로 오셔서 모든 대속의 의를 다 이루셨습니다. 아버지의 뜻과 아들의 공로와 성령의 역사,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 그 삼위일체는 창세 전에 우리를 자녀로서 작정하시는 무조건적 베푸시는 은혜의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고 아버지가 아들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요한복음 3장 16절, 로마서 8장 32절의 그 말씀이 구속사적으로 성취되고, 이제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으로 임하여, 그 아들의 영,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가 그의 의를 우리 자신의 의로 누리게 되는 그러한 큰 은혜 가운데에 신약 시대의 자녀의 특권을 누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권세를 얻는, 그러한 언약 백성의 영생의 열매를 우리가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 자신을 위하여는 그 무엇도 취하고자 하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그가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리시고, 그의 거룩함의 열매를 우리에게 먹게 하시려고 자기 자신은 그 무엇도 취하지 아니하시고, 전적으로 이를 위하여 자기 전부를 바치셨습니다. 
     이러한 아들을 하나님은 지극히 높여서 그에게 우리를 위한 대속주의, 구원주의 이름을 부여하셨습니다. 그가 우리의 주시요, 구주시요, 그리스도시요, 우리를 값 주고 사신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시요, 중재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이 모든 의를 이루시고, 이제 우리를 위한 구주가 되심, 여기에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공로, [즉] 그러한 대속의 언약의 두 본질적 요소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이제 이 부분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태어난 것이고 꼭 그만큼 유효하고 그만큼 공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의는 완전하고 그의 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두 번째, 주님이 단번에 영원히 드리신 피 제사에 속죄하고 유화시키고 값을 무르는 힘이 있습니다. 그의 순종의 공로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은혜가 태어납니다. 
     셋째, 주님이 율법 아래에서 나셔서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자 율법을 준수하시고, 자기 몸을 십자가의 제물로 삼아 대속의 값, 의의 값을 치르셨으므로, 우리가 행위가 없는 의의 전가로 값 없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네 번째, 주님이 자기 전부를 바쳐 아버지의 뜻대로 의를 이루심은 그 자신의 생명과 거룩한 삶을 전적으로 우리의 것으로 삼으시기 위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구원의 과정의 은혜, 우리를 살리시고 살게 하시는, 살아남과 살아남의 은혜, 그것이 오직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93강 결론


  1.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태어난 것이며, 꼭 그만큼 유효하고, 그만큼 공로가 있습니다. 
  2. 주님이 단번에 영원히 드리신 피 제사에 속죄하고, 유화시키고, 값을 무르는 힘이 있으니, 그의 순종의 공로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은혜가 태어납니다.
  3. 주님이 율법 아래에 나셔서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자 율법을 준수하시고 자기 몸을 십자가의 제물로 삼아 대속의 값, 의의 값을 치르셨으므로 우리가 행위가 없는 의의 전가로 값없는 죄사함과 의롭다 함을 얻게 됩니다.  
  4. 주님이 자기 전부를 바쳐 아버지의 뜻대로 의를 이루심은 그 자신의 생명과 거룩한 삶을 전적으로 우리의 것으로 삼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