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 가운데 한 분으로, 한 인격, 한 위격으로, 이 땅에서 우리를 위한 대속의 사역을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어떻게 연합되어 있을까요?
하나님과 사람으로서 비록 연합되었으나 혼합되지는 않는 두 본성들로 이루어지신 그리스도는 비록 그의 인성 때문은 아니지만 심지어 인성에 따라서도 우리의 주이시며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다(Christum…ut Deus est et homo, unitis, licet non confusis, naturis constans, Dominum nostrum verumque Dei filium esse constituimus, etiam secundum humanitatem, etsi non ratione humanitatis).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14.4.
이 부분에 대하여 소위 ‘칼케톤 공식’(Chalcedonian Formula)이라고 해서 신성과 인성은 “혼합 없이, 변화 없이, 분할 없이, 분리 없이”(inconfuse, immutabiliter, indivise, inseperabiliter) 연합되었다, 이렇게 선포한 것이 “칼케톤 신경”(Chalcedonian Creed)입니다(451년). 이 칼케톤 신경은 기독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소위 칼케톤 이후로는 더 이상 기독론이 없다고 칭해질 정도로 확정적인 신경입니다. ‘혼합 없이, 변화 없이,’ 이것은 두 본성이 섞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 본성이 한 위격 안에 있지 자체로 섞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네스토리우스(Nestorius, 386-450)는 중보자 그리스도의 인격에 있어서 신성과 인성의 ‘위격에 따른 연합’(ἕνωσις καθʾ ὑπόστασιν) 곧 위격적 연합(unio hypostatica)을 부인하고 위격(ὑπόστασις)과 본성(φύσις)을 혼동하여 두 본성의 연합을 양 위격의 연합과 같이 여겼습니다.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14.4, 각주 760.
유티케스(Eutyches, 389-456)는 “우리의 주가 연합 전에는 두 본성 가운데 계셨으며 연합 후에는 한 본성이셨다”(ex duabis naturis fuisse Dominum nostrum ante adunationem; post adunationem vero unam naturam)라고 주장하였습니다.…마치 신성과 인성이 제3의 단성의 존재 곧 ‘육화된 한 본성’(μία φύσις σεσαρκωμένη)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여겼던 것입니다. 유티케스의 사상은 448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회의에서 정죄되었고 최종적으로 451년 칼케돈 회의에서 이단으로 확정되었습니다.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14.4, 각주 761.
이것을 주장했다가 정죄된 사람은 유키테스입니다. 반면에 ‘분할 없이, 분리 없이’는 신성과 인성이 어느 특정한 장소에 차지하고, 신성은 왼쪽에만 있다거나 인성은 오른쪽에만 있다거나, 이렇게 분할도 안 되고, 신성과 인성이 서로 나눠져 있다거나 이렇게 분리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분할과 분리를 주장했던 사람은 네스토리우스입니다. 그래서 유티케스, 네스토리우스는 모두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네스토리우스는 신성과 인성이 물리적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콩과 팥과 같이. 그러니까 신성이 어느 장소를 점하고, 인성이 어느 장소를 점하고, 궁극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고, 그래서 분할되어 있고 분리되어 있다고 봤습니다. 반면에 유티케스는 신성과 인성이 화학적으로 결합되듯이, 그래서 신성과 인성이 연합하여 제3의 본성이 되었다, 이러한 아주 막말을 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곳에서 유티케스와 네스토리우스를 모두 정확하게 반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으로서 연합되었으나 혼합되지 않은 두 본성, 참 신성과 참 인성, 참 사람의 아들, 참 사람의 아들, 참 하나님, 참 사람, 우리가 ‘참’이라는 말을 사실 쓸 필요가 없습니다. 변증적일 때 쓰는 이야기입니다. 자꾸 거짓에 대한 이론들이 나타나니까, 이것을 변호하기 위하여 ‘참’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거든요.
신성과 인성은 혼합되거나 변화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셨다고 신성과 인성이 섞여서 제3의 무엇이 되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로 변화되거나, 혼합도 변화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사람의 아들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사람의 아들이심을 우리가 또한 받아들일 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사람의 아들이심이 분리되거나 분할되는 것도 아닙니다. 한 분 안에 신성과 인성이 있으므로, 어느 곳은 신성이고 어느 곳은 인성이고 그렇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중적 그리스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칼빈은 이렇게 또한 말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이단이 아까 말씀드렸던 네스토리우스, 431년 에베소 회의에서 이단으로 전개되었던 경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사람의 아들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인성에 따라서 불리시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14.5.]
칼빈의 시대 때 이와 더불어 또 다른 아리우스주의자, 또 다른 기독론 이단이 있었으니 삼위일체를 부인했던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 1509 또는 1511-1553)입니다. 세르베투스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자의 몸에서 나셨다는 그 한 가지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성경은 말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하게 났기 때문에 그때부터 존재하는 인간 예수 그리스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르베투스는 영원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특별한 인간으로 다만 하나님의 아들로 불렸다는 것입니다. 언제부터? 마리아의 몸에서 형성될 때부터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그저 헛것으로만, 계획으로만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르베투스는 삼위일체론을 거부하고, 부인하고, 삼위일체론을 부인하니까,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하고, 그러면 성경의 예수는 누구냐 이 말이에요. 특별하게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된 인간일 뿐입니다. 그 특별한 인간이 언제부터 존재했느냐, 잉태 때부터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아닙니다. 어느 때부터 존재하기 시작한 특별한 인간일 뿐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참 하나님과 참 사람, 신성과 인성의 연합, 칼빈이 정확하게 말하고 있는 두 본성으로 한 인격이 이루어지는 “위격적 연합”(unio hypostatica)을 부인하게 되는 것이죠.
영원한 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 그분의 역사적 나심으로 성육신으로 사람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셨다고 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사람의 아들이심이 섞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사람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너로부터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누가복음 1장 [35]절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알려 줍니다. 너로부터 “나실 바 거룩한 이.” ‘너로부터 난다.’ 이것은 마리아의 몸에서 잉태되는 예수 그리스도 사람의 아들을 칭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이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불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영원히 계시고 영원히 불변하시고 자존하시고 완전하신 그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변화되거나 혼합됨이 없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사람의 아들이 분할되거나 분리됨도 없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인격, 위격 안에 두 본성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아들로서 우리와 같이 되시고 우리의 자리에서 모든 의로 다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 공로에 의지해서 그와 함께 하나가 되어서, 곧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롬 8:14-15; 갈 4:6)라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독생자와 관련해서만 천사들이나 사람들에게 아버지가 되셨다는 사실, 특별히 자기들의 사악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적대적인 된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본성상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거저 베푸신 자녀 삼음으로 말미암아 자녀들이 되었다는 사실을 흔들림 없이 붙들어야 한다. 이러한 은혜는 하나님이 자신과 더불어 작정하신 자성(子性)에 따른 것이다(Hoc tamen constanter tenendum est, nunquam vel angelis vel hominibus Deum fuisse patrem nisi unigeniti filii respectu; praesertim homines, quos propria iniquitas Deo exosos reddit, gratuita adoptione esse filios, quia ille est natura.…pendere hoc a filiatione quam Deus apud se decreverat).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14.5.
영원하신 성자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게서 영원히 나신 하나님의 아들, 그분이 사람의 아들로 역사적으로 마리아의 몸에서 잉태되심으로 이제 탄생하시고, 그래서 그 아들이 모든 의를 이루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버지이심이, 이제 우리가 그를 아버지라 부르는 자리에 서므로, 하나님의 부성이, 우리의 자녀 됨이, 우리의 양자 됨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셔야 하는 것입니다. 대속의 중보의 필연성에 따라 성육신의 필연성이 또한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14.6.]
그리스도가 인간의 육체 가운데 아들이라고 불리시므로 우리가 그와 함께 자녀 되고 오직 은혜로 자녀 됨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본질상 불릴 수는 없습니다. 마땅하죠.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시죠. 그러면 어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립니까? 은혜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것이죠. 그 은혜는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다 이루신 의, 그 의를 누림에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아들이 참되신, 본성적인, 유일하신 아들이시라면, 우리는 대속으로, 구원으로, 은혜로 택한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동일한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지는 것이죠. 그것이 의롭다 여김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 삼으심[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양자의 영이 부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로마서 8장 15절, 갈라디아서 4장 6절의 그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참되고 독생하신 아들’이라는 이름은 그리스도 한 분 외에는 부여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선물로 받은 것을 그리스도는 본성적으로 소유하고 계신다(nomen veri et unigeniti uni Christo defert. ... natura possidet quod nos dono accepimus).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14.6.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됨을] 선물로 받습니다, 은사로 받습니다, 은혜로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본성적으로 자녀 됨을 지니고 계신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아들이심, 그는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역사적으로 사람의 아들이심[입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처녀에게 나시고 십자가에서 자기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자신을 드리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소유를 드리신 것이라면 하늘에서 만나, 메추라기같이 그냥 내려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주셔야 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사람의 아들로 오신 것입니다. 혈통으로는 다윗에게 나시고,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습니다. 혈통으로는 죽으심으로 다윗의 자손이라 칭하시고, 이제 그 죽음을 이기심으로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십니다(롬 1:3-4).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사람의 아들이십니다. 육신의 약하심으로는 고난당하셨으나, 영의 능력으로는 부활하셨다라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고후 13:4).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시므로 사람의 아들로서는, 다윗의 아들로서는 죽으셨고, 하나님의 아들로서는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죽으심이 생명의 길이 된 것입니다. 그의 죽으심이 사망을 죽이는 것이 되었습니다. 사망을 죽이는 죽음, 죽음을 죽이시는 죽음을 [겪]으신 것입니다. 인성으로는 죽으셨으되, 신성으로는 죽음을 죽이시는, 곧 신성으로는 생명이시기 때문에, 죽음이 생명을 이길 수 없고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이시자 생명이십니다. 곧 부활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부활하는, 그의 죽음과 그의 부활에 동참하는,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사람의 아들이심, 이 두 본성이 참 하나님, 참 사람이 아니시라면, 어찌 우리가 이 대속의 은혜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 나신 그분이 그 육신 가운데 죽으시고, 신성에 따라서는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에, 죽음을 죽이셨기 때문에, 우리의 부활의 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이 없으면 죽음도 헛되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아니라면 그가 사람의 아들이심이 헛되고,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사람의 아들이시므로 사람의 아들로 죽으셨으나 하나님의 아들로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고, 그 육신 가운데 당하신 고난을 신성에 따라서 이기시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시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롬 9:5).
[『기독교 강요』, 2.14.7.]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말씀”(요일 1:1)이십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 영원하십니다. 그가 마리아의 몸의 자궁[에서] 생명의 시작부터 영혼과 육체로 계시는 그때에도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심지어 자궁에서부터 육체에 따라서 이러한 월등함으로 장식되셨다(Hac…praestantia etiam secundum carnem ab utero ornatus fuit Christus, ut filius Dei esset).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14.7.
그래서 칼빈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심지어 자궁에서부터 육체에 따라서 이러한 월등함으로 장식되셨다’라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인성에 따라서는 너무나 미비하게 존재하시는 생명의 시작 그때에도, 이미 우리가 지난번에 보았듯이, 태초와 다름없이 만물을 채우시면서 그 만물을 채우시는, 그 세상을 채우시는 분이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시고, 그리고 세상을 다니시고, 십자가에 달리셨도다, 놀랍도다. 우리가 지난번에 보지 않았습니까. 바로 한 분 인격 가운데 동일하신 분이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을 지내셨습니다. 그래서 두 본성의 속성이 그분에게 다 돌려집니다.
[『기독교 강요』, 2.14.8.]
그러므로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부인하는 이단들은 다 구원의 도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세르베투스도, 마니도, 유티케스도, 네스토리우스도 우리는 [거부하며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동일하신 그 하나님의 아들, 성자께서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인성에 따라서 사람의 아들이신 그분이 신성에 따라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래서 그분은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시다. 단지 사람의 그림자로 오신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능력만 지닌 특별한 인간에 불과한 분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일 본질이시고 우리와 동일 본질이신 참 하나님이심과 참 사람이시다. 그리하여 두 본성 가운데 한 인격, 두 본성 가운데 인격의 하나인 그분이 우리의 대속의 의를 다 이루셨다. 인성에 따라 자기 자신을 주시고 신성에 따라 자기 자신을 주신 그 의를 우리 것[으로]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결론]
이제 이 부분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신성과 인성의 위격적 연합 가운데 중보자의 한 인격을 구성하십니다.
두 번째, 성육신으로 두 본성은 한 인격 가운데 연합하나 서로 분리되지도 않고 혼합되지도 않습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영원하신 독생자가 그 동일한 인격 가운데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자기의 몸을 희생제물로 드리시고, 그 값으로 우리를 사심으로써 사람의 아들인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
네 번째, 성육신한 그리스도는 두 본성 가운데 한 인격으로서, 신성에 따라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심이 합당하고, 인성에 따라서는 사람의 아들이라고 불리심이 합당하십니다.
84강 결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신성과 인성의 위격적 연합 가운데 중보자의 한 인격을 구성합니다.
성육신으로 두 본성은 한 인격 가운데 연합하나 서로 분리되지도 않고 혼합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독생자가 그 동일한 인격 가운데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자기의 몸을 희생제물로 드리시고 그 값으로 우리를 사심으로써 사람의 아들인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
성육신한 그리스도는 두 본성 가운데 한 인격으로서 신성에 따라서는 하나님의 아들, 인성에 따라서는 사람의 아들이라고 불리십니다.
84강 | 2.14.4-8 (2권 425-438페이지)
두 본성의 혼합과 분리를 주장하는 자들
[『기독교 강요』, 2.14.4.]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 가운데 한 분으로, 한 인격, 한 위격으로, 이 땅에서 우리를 위한 대속의 사역을 다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어떻게 연합되어 있을까요?
하나님과 사람으로서 비록 연합되었으나 혼합되지는 않는 두 본성들로 이루어지신 그리스도는 비록 그의 인성 때문은 아니지만 심지어 인성에 따라서도 우리의 주이시며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다(Christum…ut Deus est et homo, unitis, licet non confusis, naturis constans, Dominum nostrum verumque Dei filium esse constituimus, etiam secundum humanitatem, etsi non ratione humanitatis).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14.4.
이 부분에 대하여 소위 ‘칼케톤 공식’(Chalcedonian Formula)이라고 해서 신성과 인성은 “혼합 없이, 변화 없이, 분할 없이, 분리 없이”(inconfuse, immutabiliter, indivise, inseperabiliter) 연합되었다, 이렇게 선포한 것이 “칼케톤 신경”(Chalcedonian Creed)입니다(451년). 이 칼케톤 신경은 기독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소위 칼케톤 이후로는 더 이상 기독론이 없다고 칭해질 정도로 확정적인 신경입니다. ‘혼합 없이, 변화 없이,’ 이것은 두 본성이 섞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 본성이 한 위격 안에 있지 자체로 섞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네스토리우스(Nestorius, 386-450)는 중보자 그리스도의 인격에 있어서 신성과 인성의 ‘위격에 따른 연합’(ἕνωσις καθʾ ὑπόστασιν) 곧 위격적 연합(unio hypostatica)을 부인하고 위격(ὑπόστασις)과 본성(φύσις)을 혼동하여 두 본성의 연합을 양 위격의 연합과 같이 여겼습니다.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14.4, 각주 760.
유티케스(Eutyches, 389-456)는 “우리의 주가 연합 전에는 두 본성 가운데 계셨으며 연합 후에는 한 본성이셨다”(ex duabis naturis fuisse Dominum nostrum ante adunationem; post adunationem vero unam naturam)라고 주장하였습니다.…마치 신성과 인성이 제3의 단성의 존재 곧 ‘육화된 한 본성’(μία φύσις σεσαρκωμένη)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여겼던 것입니다. 유티케스의 사상은 448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회의에서 정죄되었고 최종적으로 451년 칼케돈 회의에서 이단으로 확정되었습니다.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14.4, 각주 761.
이것을 주장했다가 정죄된 사람은 유키테스입니다. 반면에 ‘분할 없이, 분리 없이’는 신성과 인성이 어느 특정한 장소에 차지하고, 신성은 왼쪽에만 있다거나 인성은 오른쪽에만 있다거나, 이렇게 분할도 안 되고, 신성과 인성이 서로 나눠져 있다거나 이렇게 분리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분할과 분리를 주장했던 사람은 네스토리우스입니다. 그래서 유티케스, 네스토리우스는 모두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네스토리우스는 신성과 인성이 물리적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콩과 팥과 같이. 그러니까 신성이 어느 장소를 점하고, 인성이 어느 장소를 점하고, 궁극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고, 그래서 분할되어 있고 분리되어 있다고 봤습니다. 반면에 유티케스는 신성과 인성이 화학적으로 결합되듯이, 그래서 신성과 인성이 연합하여 제3의 본성이 되었다, 이러한 아주 막말을 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곳에서 유티케스와 네스토리우스를 모두 정확하게 반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으로서 연합되었으나 혼합되지 않은 두 본성, 참 신성과 참 인성, 참 사람의 아들, 참 사람의 아들, 참 하나님, 참 사람, 우리가 ‘참’이라는 말을 사실 쓸 필요가 없습니다. 변증적일 때 쓰는 이야기입니다. 자꾸 거짓에 대한 이론들이 나타나니까, 이것을 변호하기 위하여 ‘참’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거든요.
신성과 인성은 혼합되거나 변화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셨다고 신성과 인성이 섞여서 제3의 무엇이 되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로 변화되거나, 혼합도 변화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사람의 아들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사람의 아들이심을 우리가 또한 받아들일 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사람의 아들이심이 분리되거나 분할되는 것도 아닙니다. 한 분 안에 신성과 인성이 있으므로, 어느 곳은 신성이고 어느 곳은 인성이고 그렇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중적 그리스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칼빈은 이렇게 또한 말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이단이 아까 말씀드렸던 네스토리우스, 431년 에베소 회의에서 이단으로 전개되었던 경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사람의 아들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인성에 따라서 불리시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14.5.]
칼빈의 시대 때 이와 더불어 또 다른 아리우스주의자, 또 다른 기독론 이단이 있었으니 삼위일체를 부인했던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 1509 또는 1511-1553)입니다. 세르베투스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자의 몸에서 나셨다는 그 한 가지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성경은 말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하게 났기 때문에 그때부터 존재하는 인간 예수 그리스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르베투스는 영원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특별한 인간으로 다만 하나님의 아들로 불렸다는 것입니다. 언제부터? 마리아의 몸에서 형성될 때부터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전에는 그저 헛것으로만, 계획으로만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르베투스는 삼위일체론을 거부하고, 부인하고, 삼위일체론을 부인하니까,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하고, 그러면 성경의 예수는 누구냐 이 말이에요. 특별하게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된 인간일 뿐입니다. 그 특별한 인간이 언제부터 존재했느냐, 잉태 때부터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아닙니다. 어느 때부터 존재하기 시작한 특별한 인간일 뿐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참 하나님과 참 사람, 신성과 인성의 연합, 칼빈이 정확하게 말하고 있는 두 본성으로 한 인격이 이루어지는 “위격적 연합”(unio hypostatica)을 부인하게 되는 것이죠.
영원한 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 그분의 역사적 나심으로 성육신으로 사람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셨다고 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사람의 아들이심이 섞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사람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너로부터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누가복음 1장 [35]절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알려 줍니다. 너로부터 “나실 바 거룩한 이.” ‘너로부터 난다.’ 이것은 마리아의 몸에서 잉태되는 예수 그리스도 사람의 아들을 칭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이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불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영원히 계시고 영원히 불변하시고 자존하시고 완전하신 그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변화되거나 혼합됨이 없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사람의 아들이 분할되거나 분리됨도 없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인격, 위격 안에 두 본성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아들로서 우리와 같이 되시고 우리의 자리에서 모든 의로 다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 공로에 의지해서 그와 함께 하나가 되어서, 곧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롬 8:14-15; 갈 4:6)라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독생자와 관련해서만 천사들이나 사람들에게 아버지가 되셨다는 사실, 특별히 자기들의 사악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적대적인 된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본성상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거저 베푸신 자녀 삼음으로 말미암아 자녀들이 되었다는 사실을 흔들림 없이 붙들어야 한다. 이러한 은혜는 하나님이 자신과 더불어 작정하신 자성(子性)에 따른 것이다(Hoc tamen constanter tenendum est, nunquam vel angelis vel hominibus Deum fuisse patrem nisi unigeniti filii respectu; praesertim homines, quos propria iniquitas Deo exosos reddit, gratuita adoptione esse filios, quia ille est natura.…pendere hoc a filiatione quam Deus apud se decreverat).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14.5.
영원하신 성자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게서 영원히 나신 하나님의 아들, 그분이 사람의 아들로 역사적으로 마리아의 몸에서 잉태되심으로 이제 탄생하시고, 그래서 그 아들이 모든 의를 이루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버지이심이, 이제 우리가 그를 아버지라 부르는 자리에 서므로, 하나님의 부성이, 우리의 자녀 됨이, 우리의 양자 됨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셔야 하는 것입니다. 대속의 중보의 필연성에 따라 성육신의 필연성이 또한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14.6.]
그리스도가 인간의 육체 가운데 아들이라고 불리시므로 우리가 그와 함께 자녀 되고 오직 은혜로 자녀 됨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본질상 불릴 수는 없습니다. 마땅하죠.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시죠. 그러면 어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립니까? 은혜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것이죠. 그 은혜는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다 이루신 의, 그 의를 누림에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아들이 참되신, 본성적인, 유일하신 아들이시라면, 우리는 대속으로, 구원으로, 은혜로 택한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동일한 자리에 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지는 것이죠. 그것이 의롭다 여김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 삼으심[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양자의 영이 부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로마서 8장 15절, 갈라디아서 4장 6절의 그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참되고 독생하신 아들’이라는 이름은 그리스도 한 분 외에는 부여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선물로 받은 것을 그리스도는 본성적으로 소유하고 계신다(nomen veri et unigeniti uni Christo defert. ... natura possidet quod nos dono accepimus).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14.6.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됨을] 선물로 받습니다, 은사로 받습니다, 은혜로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본성적으로 자녀 됨을 지니고 계신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아들이심, 그는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역사적으로 사람의 아들이심[입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처녀에게 나시고 십자가에서 자기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자신을 드리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소유를 드리신 것이라면 하늘에서 만나, 메추라기같이 그냥 내려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주셔야 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사람의 아들로 오신 것입니다. 혈통으로는 다윗에게 나시고,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습니다. 혈통으로는 죽으심으로 다윗의 자손이라 칭하시고, 이제 그 죽음을 이기심으로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십니다(롬 1:3-4).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사람의 아들이십니다. 육신의 약하심으로는 고난당하셨으나, 영의 능력으로는 부활하셨다라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고후 13:4).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시므로 사람의 아들로서는, 다윗의 아들로서는 죽으셨고, 하나님의 아들로서는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죽으심이 생명의 길이 된 것입니다. 그의 죽으심이 사망을 죽이는 것이 되었습니다. 사망을 죽이는 죽음, 죽음을 죽이시는 죽음을 [겪]으신 것입니다. 인성으로는 죽으셨으되, 신성으로는 죽음을 죽이시는, 곧 신성으로는 생명이시기 때문에, 죽음이 생명을 이길 수 없고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이시자 생명이십니다. 곧 부활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부활하는, 그의 죽음과 그의 부활에 동참하는,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사람의 아들이심, 이 두 본성이 참 하나님, 참 사람이 아니시라면, 어찌 우리가 이 대속의 은혜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 나신 그분이 그 육신 가운데 죽으시고, 신성에 따라서는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에, 죽음을 죽이셨기 때문에, 우리의 부활의 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이 없으면 죽음도 헛되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아니라면 그가 사람의 아들이심이 헛되고,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사람의 아들이시므로 사람의 아들로 죽으셨으나 하나님의 아들로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고, 그 육신 가운데 당하신 고난을 신성에 따라서 이기시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시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롬 9:5).
[『기독교 강요』, 2.14.7.]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말씀”(요일 1:1)이십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 영원하십니다. 그가 마리아의 몸의 자궁[에서] 생명의 시작부터 영혼과 육체로 계시는 그때에도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심지어 자궁에서부터 육체에 따라서 이러한 월등함으로 장식되셨다(Hac…praestantia etiam secundum carnem ab utero ornatus fuit Christus, ut filius Dei esset).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14.7.
그래서 칼빈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심지어 자궁에서부터 육체에 따라서 이러한 월등함으로 장식되셨다’라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인성에 따라서는 너무나 미비하게 존재하시는 생명의 시작 그때에도, 이미 우리가 지난번에 보았듯이, 태초와 다름없이 만물을 채우시면서 그 만물을 채우시는, 그 세상을 채우시는 분이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시고, 그리고 세상을 다니시고, 십자가에 달리셨도다, 놀랍도다. 우리가 지난번에 보지 않았습니까. 바로 한 분 인격 가운데 동일하신 분이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을 지내셨습니다. 그래서 두 본성의 속성이 그분에게 다 돌려집니다.
[『기독교 강요』, 2.14.8.]
그러므로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부인하는 이단들은 다 구원의 도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세르베투스도, 마니도, 유티케스도, 네스토리우스도 우리는 [거부하며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동일하신 그 하나님의 아들, 성자께서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인성에 따라서 사람의 아들이신 그분이 신성에 따라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래서 그분은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시다. 단지 사람의 그림자로 오신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능력만 지닌 특별한 인간에 불과한 분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일 본질이시고 우리와 동일 본질이신 참 하나님이심과 참 사람이시다. 그리하여 두 본성 가운데 한 인격, 두 본성 가운데 인격의 하나인 그분이 우리의 대속의 의를 다 이루셨다. 인성에 따라 자기 자신을 주시고 신성에 따라 자기 자신을 주신 그 의를 우리 것[으로]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결론]
이제 이 부분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신성과 인성의 위격적 연합 가운데 중보자의 한 인격을 구성하십니다.
두 번째, 성육신으로 두 본성은 한 인격 가운데 연합하나 서로 분리되지도 않고 혼합되지도 않습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영원하신 독생자가 그 동일한 인격 가운데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자기의 몸을 희생제물로 드리시고, 그 값으로 우리를 사심으로써 사람의 아들인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
네 번째, 성육신한 그리스도는 두 본성 가운데 한 인격으로서, 신성에 따라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심이 합당하고, 인성에 따라서는 사람의 아들이라고 불리심이 합당하십니다.
84강 결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신성과 인성의 위격적 연합 가운데 중보자의 한 인격을 구성합니다.
성육신으로 두 본성은 한 인격 가운데 연합하나 서로 분리되지도 않고 혼합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독생자가 그 동일한 인격 가운데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자기의 몸을 희생제물로 드리시고 그 값으로 우리를 사심으로써 사람의 아들인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
성육신한 그리스도는 두 본성 가운데 한 인격으로서 신성에 따라서는 하나님의 아들, 인성에 따라서는 사람의 아들이라고 불리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