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강 [2.9.1-5] 복음: 그리스도가 율법을 성취하신 은혜의 공표

관리자
조회수 72




74 | 2.9.1-5 (2권 319-326페이지)



스콜라주의자들의 ‘권고’와 ‘소죄’ 개념의 오류



[『기독교 강요』. 2.9.1.] 


     『기독교 강요』 2권 7장과 8장에서 율법을 다룬 후 이어지는 9장에서는 복음에 대한 논의가 전개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시대의 율법을 통하여서, 언약과 절기, 제사 그 가운데 행해지던 의식들을 통하여서, 오실 메시아로서 예표되셨습니다. 이제 신약시대 복음에서는 그 예수 그리스도가 더 확실한 빛 가운데 분명하고 친밀하게 우리에게 알려지셨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면서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말 4:2)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으로(adventu) 말미암아 훨씬 더 큰 빛이 우리에게 드러났습니다. 이 빛을 구약시대 백성들도 소망하였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우리가 복음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 알게 되지만 구약시대 선지자들도 이 구원에 대하여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폈다고 전합니다(벧전 1:10). 그들이 섬긴 것은 단지 그들 시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통하여서 이 시대, 신약시대[의] 우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다라고 또한 그렇게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구약 선지자들의 증언은 더욱 우리 앞에 친숙하게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증언한 은혜가 이제 우리에게 실제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다 이루신 의로 실체적으로 역사합니다. 구약시대 때는 단지 조금만 맛보았을 뿐이나 우리에게는 그 열매가 더욱 풍성하게 부여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모세에 의해서 증거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에 대해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나에 대하여 증언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요 5:46). 그러나 아직 그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온전히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그런 가운데 있었다면, 희미하게 보았다면, 이제 새 시대에는 보게 되고 또 듣게 되고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믿어서 구원에 이르는, 자녀가 되는 그 은혜를 확실하게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는 귀는 복이 있다. 선지자들은 그리고 임금들은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다’(눅 10:23-24; 마 13:16-17)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복음의 계시는 확실한 계시요, 실체적 계시요, 성취의 계시입니다. 아브라함도 그리스도의 때를 보고 즐거워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요 8:56). 그러나 아브라함의 즐거움은 아직 성취된 즐거움이 아니라 소망의 즐거움, 바라보는 즐거움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의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라고 요한복음 1장 18절에서 말씀하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셔서 이제 그 참 빛이 이 세상에 오셨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때는 단지 그림자(umbra)로 언뜻 보았던 그 비밀들이 이제 “그리스도의 인격 가운데”(in Christi persona) 더욱 빛나고, 우리가 그것을 깨닫는 이해와 지성을 얻게 되고, 그리고 그 빛 가운데 서로 하나의 연합체(societas)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할 뿐만 아니라 이 신약시대 성도들이 그 안에 예수를 머리로 한 지체로서 하나의 연합체가 되어서 서로 은혜를 나누고 서로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 바라보는 그러한 비밀을 더욱 분명하게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그 하나님이 이제는 “아들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히 1:1-2)라고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적용. 히 1:3)이십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알게 되고, 그리고 그 본체가 무엇인가를 우리가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시대 때도, 옛 시대에도 그들을 이끄신 지도자(dux)셨습니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인도하시던 분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셨다는 말씀입니다. 칼빈은 고린도전서 10장 4절, 광야에 인도하시던 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반석의 물, 만나, 메추라기, 그 갈하지 않는 음료와 그리고 생명의 양식이 예수 그리스도를 칭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밝히 바라보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4장 6절에서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라고 증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빚, 그 빛은 생명의 빛이요, 그 빛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아버지와 아들의 동일하신 한 분이심을 우리에게 드러내시는 그 계시의 빛이십니다. 그 은혜와 진리의 빛, 그 빛이 이제 ‘우리 안에 비추었느니라’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9.2.] 

     이제는 한낮(meridies)의 삶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눈먼 자가 아니요, 이제는 우리가 귀가 닫힌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복음을 그리스도의 비밀에 대한 확실한 선포라고 받아들인다(evangelium accipio pro clara mysterii Christi manifestatione).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9.2.

     복음을 통하여서 그리스도의 비밀(mysterium Christi)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칼빈은 여기에서 복음을 “그리스도의 비밀에 대한 확실한 선포”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믿어서 아는 누구를 믿느냐,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으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롬 10:17). 복음은 그 믿음의 교리입니다. 
     율법의 약속(promissio)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계시되었던 그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과 화목케 된 자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고, 하나님의 사랑, 그의 자비, 그의 아버지로서의 호의에 대한 그 증언들을 실체적으로 아는 것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은혜의 공표”(promulgatio exhibitae in Christo gratiae), 그것이 바로 복음이라고 또한 이야기합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 이루신 의와 그 의의에 대한 선포, 그리고 그것에 대한 사도들의 증언, 그 권위 가운데 우리에게 증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장 1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라고 말씀하고], 디모데후서 1장 10절에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이 드러”났다라고 이렇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새롭고 비상한 종류의 사신(使臣)인(참조. 고후 5:20) 복음을 통하여 자기의 약속을 성취하셨다는 사실과 그 약속의 실제가 아들의 인격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novum et insolitum legationis genus fuisse docet, qua Deus quae pollicitus fuerat praestitit: ut in Filii persona extaret promissionum veritas) 가르치고자 하신 것이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와 “아멘”(고후 1:20)이 된다는 바울이 전하는 말씀이 참되다는 사실에 언제나 익숙해 있다. 왜냐하면 그 약속이 그들 자신의 마음에 인침되었기 때문이다(고후 1:22).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9.2.

     칼빈은 또한 복음을 하나님이 새롭고 비상하게 사용하시는 사신과 같다[고 말합니다]. ‘마치 왕이 사신을 보내서 소식을 전하듯이, 하나님은 새롭고 비상한 사신으로 복음을 주셨다. 그리하여 복음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사실과 그 약속의 실제가 아들의 인격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셨다. 그래서 복음 가운데 모든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고 또한 ‘아멘’이 된다’라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고 우리가 ‘아멘’ 하여 이제 구원에 이르게 되는데(고후 1:20), 그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의 마음에 인 침이 되는 것은 복음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주님 위에서, 인자이신 그 주님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되리라’(요 1:51)[라고 말씀합니다]. 야곱이 꿈 가운데 사닥다리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천사들, 사자들을 보았듯이 이제 이 시대에는 그 천사들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된다고 우리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9.3.]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을 전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이렇게 선포합니다(딤후 1:1).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구원의 도, 그것이 우리에게 약속의 성령으로서, 약속된 성령으로서 인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여 구원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생명과 그리스도의 진리, 그 복음의 역사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으로서 옷 입혀진 그 하나님의 말씀, 이것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우리가 누리게 되는 은혜인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그리스도를 영접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됩니다. 그 그리스도가 성령의 임재로 우리의 마음속에 내주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하늘의 생명의 완전함에 속한 모든 것’(quicquid ad caelestis vitae perfectionem)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가 가지신 모든 신령한 것, 그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얻게 되는데, 이 귀한 복된 즐거운 소식이 바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이 모형들 아래에 예표한 것을 복음은 손가락으로 가리킨다(evangelium digito monstrat quod lex sub typis adumbravit).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9.3.

     그리하여 칼빈은 ‘율법이 모형들 아래에 예표한 것을 복음은 손가락으로 가르킨다’라고 이렇게 설파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강요』. 2.9.4.] 

     우리는 [우리의] 아무 공로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imputatio iustitiae)로 말미암아,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역사입니다. 이 복음의 역사는 어떤 이전의 말씀도 폐기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율법의 성취입니다. 복음은 구약시대에 예언된 말씀의 성취입니다. 율법의 의와 복음의 의가 일치하지 않지만, 율법의 의가 폐기된 것이 아니라 완성된 것, 그리스도가 율법의 모든 약속을 성취한 것이 복음의 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율법이 약속한 모든 것이 유효하고, 또 성취가 되는 인준이고 증명입니다. 

복음이 전체 율법을 계승한 것은 구원의 다른 질서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복음은 율법이 약속한 모든 것이 유효함을 인준하고 증명하였으며 그림자들에 몸을 결합시켰다(non ita successit evangelium toti legi, ut diversam rationem salutis afferret: quin potius ut sanciret ratumque esse probaret quidquid illa promiserat et corpus umbris adiungeret).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9.4.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 가운데서 구약의 그림자가 실체로 결합이 되는, 몸으로 계시되는, 성취되는 그 역사의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에 이르는 그 은혜, 그것이 전적으로 값없이 주어지는 무조건적[인] 절대적 은혜이기 때문에 복음은 오직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전하는 것입니다. 
     이런 복음은 율법과 선지자들이 알린 그 말씀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과 선지자들의 증거를 받은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전하는 것입니다(롬 3:21).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감춰져 있었던, 영세 전부터 감춰져 있었던 그 비밀이 이제 나타나신 바 된 것입니다(롬 16:25-26). 이것이 선지자들의 글들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성취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구약의 것을 대체하는 새로운 것이라기보다 구약의 약속을 성취하고 구약의 희미한 계시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는, 그 명확한 선포의 말씀, 그것이 또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9.5.]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는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이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이시고 희생제물이시고, 예수 그리스도 그 자신을 믿어 구원에 이르는 것이 복음의 요체(summa evangelii)임을 선포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단지 광야에 외치는 소리요(요 1:23; 참조. 사 40:3), 본인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자요, 심부름꾼, 곧 하나님의 사자요, 예언된 엘리아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시중 드는 그 직분을 감당할 뿐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가 구원의 유일하신 생명이시요, 빛이십니다. 선지자들과 또 세례 요한과 그리고 사도들과 이 시대 모든 복음의 선포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하신 구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 그가 우리의 유일하신 구원주이심과 그가 다 이루신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그 의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생을 얻음에 대한 그러한 복된 소식인 것입니다. 

[결론] 

     이제 이 부분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형상은 이미 구약의 속죄와 희생제물들을 통하여서도 희미하게 나타났으나 이제 그 빛이 더욱 크고 분명하게 우리의 마음에 친근하게 비추게 되었습니다. 
     둘째, 복음은 그리스도의 비밀과 그 안에 제시된 은혜에 대한 확실한 선포로서 하나님의 약속이 그 실체인 아들 안에서 이루어졌음, 그리고 그 이루어지신 모든 의가 우리에게 인 침 되는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을 믿음의 교리라고 부른 그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셋째, 율법이 모형들 아래에서 예표한 것을 복음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복음은 율법의 약속이 유효하다는 것을 인준하고 증명하며 그 율법의 그림자에 실체를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넷째, 복음은 율법과 선지자에게 증거를 받은 것으로서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바, 그리스도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심에 그 요체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74강 결론


  1.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형상은 이미 구약의 속죄와 희생제물들을 통하여도 희미하게 나타났으나 이제 그 빛이 더욱 크고 분명하게 우리의 마음에 친근하게 비춥니다.
  2. 복음은 그리스도의 비밀과 그 안에 제시된 은혜에 대한 확실한 선포로서, 하나님의 약속이 그 실체인 아들 안에서 이루어졌음이 복음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인침되므로, 바울은 이를 “믿음의 교리”라고 부릅니다.
  3. 율법이 모형들 아래에 예표한 것을 복음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바, 복음은 율법의 약속이 유효함을 인준하고 증명하며 그 그림자에 실체를 결합시킵니다. 
  4. 복음은 율법과 선지자에게 증거를 받은 것으로서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바, 그리스도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심에 그 요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