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강 [2.8.35-44] 제5-7계명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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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 2.8.35-44 (2권 281-293페이지)



제5-7계명 해석



     제1-4계명까지 하나님 사랑의 계명, 경건의 계명, 예배의 계명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제5계명에서 10계명까지, 이웃 사랑의 계명, 둘째 돌판의 계명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기독교 강요』. 2.8.35.] 

     이제 둘째 돌판에 해당하는 제5계명을 보겠습니다.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Honora patrem tuum et matrem, 출 20:12), 이렇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부모 공경은 단지 부모 공경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높낮이를 정하여서 위에 두신 사람을 공경하라’[라고] 넓게 대상을 우리가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위에 두신 자들을 하나님이 친히 두셨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위에 두신 자들을 받아들여야 하며 영예와 순종과 감사, 이 모두로 그들에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quos nobis praefecit Dominus, eos suspiciamus, eosque et honore et obedientia et gratitudine prosequamur).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8.35.

     그들에 대해서 마땅한 영예를 돌리고, 그들에게 순종하고, 그들에게 감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위에 있는 사람을 경멸하거나, 또 완고하게 명령을 거부하거나, 또한 감사치 않고 배은망덕한 것은 위에 있는 사람들을 깎아내리는 것이므로, 그들의 고귀함을 무시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뜻을 위배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여기라(딤전 5:17)라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위에 있는 사람을 배나 존경하라’, ‘장로들을 존경하라’라고 했는데 이것은 단순히 어떠한 경륜이나, 또 경험이나, 아니면 그들이 교회에서 가지고 있는 지위나,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바인 것입니다. 장로라는 것은 연장자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하나님이 연장자를 두셔서 먼저 그들이 교회 안에서 믿게도 하시고, 또 교회에서 여러 일을 감당도 하고, 그런 자들을 마땅히 공경하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천품은 높은 지위를 얻고자 하는 욕구에 부풀어 올라 있어 자기를 낮추어 복종시키는 것을 더 없이 고통스러워한다.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8.35.

     이러한 복종(subiectio)의 계명은 타락한 인류의 본성과는 배치됩니다. 타락한 인류는 교만하고 또 오만해서 그리고 배은망덕해서 무엇보다도 베풂을 받은 것을 잊어버리고, 위에 사람을 마땅히 존중하지 않고, 부모는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고 올바르게 사람들을 대하지 않는 그러한 것이 타락한 인류의 천성이라는 것입니다. 합법적인 복종에 이르지 못하고 항상 거역하고 무슨 일에 대해서 화평치 못하고 분쟁을 일으키는 이러한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버지’와 ‘하나님’과 ‘주’라는 칭호(titulus)가 다 하나님께 사용하는 칭호 아닙니까? 칼빈은 여기에서 ‘아버지’, ‘주’, 이러한 단어들이 세상에서도 사용되는 단어고, 하나님이 이러한 단어들을 들어서 하나님을 부르시는 호칭으로 사용하게 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위에 둔 세상의 아버지, 또 세상에서 주인 된 자들, 이런 자들에게도 마땅히 공경을 해야 된다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칼빈은 이야기합니다. 

[『기독교 강요』. 2.8.36.]

여호와가 임명하심으로 누군가 우리 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에 우리는 그에게 공경, 순종, 감사를(reverentia, obedientia, gratitudine) 돌려야 하고, 그밖에도 우리가 그를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서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가 우리의 윗사람으로서 이러한 영예를 받을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상관이 없다.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8.36.

     이 5계명에 있어서 세 가지가 주목됩니다. 첫째로는 공경이요, 둘째로는 순종이요, 셋째로는 감사입니다. 공경은 하나님이 위에 두신 자들에 대한 아래 있는 사람들의 마땅한 섭리의 법칙입니다. 부모의 권세를 모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자를 칼빈은 ‘괴물’(monstrum)이라고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아주 엄격하게 이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빛을 보도록 했는데 그 부모를 거역하는 자는 ‘빛의 은총’(beneficio lucis)을 누릴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저주하는,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출 21:17; 레 20:19; 잠 20:20). 저주라는 말이 뭘까요. 크게 보면 공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멸시하고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경하라.’ 
     그리고 두 번째는 순종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부모를 공경한다 하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공경은 그저 형식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불순종한 자에게 죽음의 형벌을 내리라고 명령하십니다(신 21:18-21).
     세 번째는 감사입니다. 부모에게 감사한다는 것은 부모에게 마땅히 되돌린다는 것입니다. 마치 자녀가 부모에게 무슨 혜택이라도 베풀듯이 그렇게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를 섬기고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감사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마 15:4-6). 부모에게 감사치 않은 자가 어떻게 이웃에게 감사하며 이웃을 사랑하겠습니까? 그리고 부모에게 감사치 않는 자가 또 하나님께는 감사하겠습니까? 그래서 감사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듯이, 우리의 감사가 부모를 향한 감사가 되어야 된다고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기독교 강요』. 2.8.37.]

     이 계명이 ‘약속이 있는 첫째 계명이다’라고 에베소서 6장 2절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언약이 다 약속이 있죠. 그런데 왜 5계명을 이렇게 불렀을까요? 그것은 바로 첫째 판의 제1-4계명, 그것이 하나님 사랑의 계명이고, 하나님 한 분만을 우리가 섬기고, 우상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고, 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안식일을 또 준수하고, 주일을 성수하고, 이 가운데 주어지는 약속, 그래서 첫째 돌판과 둘째 돌판이 서로 조화롭게 해석되는 그 약속의 첫째 부분에 바로 부모 공경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부모 공경을 우리가 온전히 행했을 때, 그때 하나님은 장수의 복도 주시고, 땅의 소유도 누리게 하시고, 현세의 복도 충만하게 주신다고 그렇게 성경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부모 공경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부모는 어떤 자격에 따라서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낳은 부모는 다 동일한 부모입니다. 그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모든 일을 하나님 뜻 가운데 형통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8.38.]

     이 부모 공경은 “주 안에서”(in Domino) 해야 됩니다(엡 6:1). 부모는 그들과 자기의 영예를 함께 나누시는 주님이 세워 주신 높은 자리입니다. 부모는 우리를 낳고 또 자녀를 기르고 그렇게 하신 분이지만, 부모는 주님이 그 자리에 두신, 주님이 세우신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 주님을 떠나는 가운데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부모 공경의 진정한 뜻은 하나님의 명령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행하고자 하시는 바, 그것이 부모 공경에 참 뜻이라면, 하나님을 멀리한다면 어찌 부모를 공격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부모에 대한 공경, 그것이 우리의 마땅한 5계명의 순종일진대 어찌 하나님을 떠난 자가 5계명을 순종할 수 있다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주 안에서 공경하라는 것은 주님을 사랑함으로 부모 공경이 멀어지는 그런 일을 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예배드리고 경배하는 자만이 진정 부모에게 공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않는 자가 어찌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한 계명 순종을 하겠습니까? 5계명도 6계명도 7계명도 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야 됩니다. 인격적인 순종을 해야 됩니다, 율법에 대해서. 그것은 바로 주 안에서, 우리가 은혜 가운데, 하나님께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하는 가운데 부모에게 감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더 부모를 공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8.39.]

     제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Non occides, 출 20:13)는 것입니다. 이 계명은 단지 사람의 목숨을 해하지 말라라는 그러한 소극적 명령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해야 된다. 이웃의 생명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야 된다.’ 이웃 사람이 굶주린다면 먹여야 되고 추위에 입을 것이 없다면 입을 것을 주라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의 적극적 해석입니다, 제유법적 해석입니다, 입법자의 뜻에 부합하는 해석입니다. 
     하나님은 영혼과 육체의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우리의 육체에 해당하는 것을 돌볼 뿐만 아니라 영혼에 대한 것도 돌봐야 됩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육체를 해하는 것에만 살인(homicidium)이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영혼, 인격, 그것을 모독하는 것도 살인죄입니다.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다른 사람에게 저주하고, 다른 사람에게 분을 내고 시기하고 증오하는 것, 이것도 살인이라는 것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그것이 곧 살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 대하여 (업신여기는) 라가”라는 말을 “하는 자마다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하다라고 말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말씀했습니다(마 5:22). 

[『기독교 강요』. 2.8.40.]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가장 귀하게 지은, 모든 만물을 짓고 마지막 날 지은, 천사조차도 짓고 난 후에 지은 그 사람입니다. 누구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의 소유자입니다. 타락 이후 하나님의 형상의 상실을 가져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어떠함, 인격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원하고, 예수님을 사람으로 보내셨지 않습니까? 
     첫째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한 사람입니다. 둘째로 모든 사람은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한 ‘혈육’(caro)이라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웃과 피를 나눈 혈육이라는 개념을 크게 구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로 피를 나눈 형제, 자매[도] 이웃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원수도 사랑하라.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이웃이다,’ 이렇게 칼빈이 해석할 때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곧 혈육에 대한 사랑 계명, 그것과 배치되지 않습니다. 
     사람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을 공경하는 것과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혈육을 귀하게 여기는 것, 그래서 서로 형제 자매를 낫게 여기고, 이웃도 낫게 여기고,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마음속으로도 남을 해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이다. 이렇게 칼빈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8.41.]

     제7계명은 “간음하지 말라”(Non moechaberis, 출 20:14)는 것입니다. 이것도 단지 육체적으로 어떤 다른 사람을 겁탈하거나 강간을 하거나 이런 것들을 금지하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자기의 형상을 한 인류가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따른 정숙(pudicitia)과 순결(puritas)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더러움(immundus)을 멀리하고 육체의 추함이나 무절제, 그 욕정을 버리고 삶의 모든 부분에서 절도를 가지고(continenter)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적극적인(affirmativus)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순결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이 지상에 남녀가 한 몸이 되어 결혼(coniugium)을 하여 한 연합체(societas)를 이루는, 몸을 이루는 그 가정이 순결하기를 또한 원합니다. 하나님이 뜻하시지 않은 가정은,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는 가정은 결코 한 몸을 이루는 가정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결혼한 자는 결혼 자체도 순결해야 되며, 결혼의 삶도 순결해야 됩니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고, 서로 남편과 아내가 사랑하고 공경하는 그 덕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8.42-43.]

     부부 간에 한 몸이 되어 자녀를 낳고 하는 그러한 은혜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이 뜻하시지 않는다면 아무도 스스로 어떤 이유를 내세워 결혼하지 않는 것은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마 19:11-12). 독신(caelibatus)도 하나님의 은사(donum Dei)입니다. 여호와가 “특별한 은혜로”(gratia singulari)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독신 가운데 있는 사람은 육체의 평온과 편의를 추구하지 말게 하고, 결혼의 고리로부터 자유로우니 더욱 신속하고도 준비를 잘 갖춰서 모든 경건의 의무를 감당하게 하라. … 바울은 정숙을 육체의 정절이 결합된 영혼의 순결이라고 정의[한다](Pudicitiam … definit Paulus, coniunctam cum castitate corporis animi puritatem).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8.43.

     ‘정숙은 육체의 정절이 결합된 영혼의 순결이다’라고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경건의 의무를 다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그 은사 가운데 하나님은 특별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결혼하기를 원합니다(고전 6:15-18; 7:2, 9). 그래서 부부가 한 연합체의 몸을 이루고, 후손을 번성하고, 또 가정을 이루고, 부부가 함께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고, 이것을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기독교 강요』. 2.8.44.]

     우리에게 이 명령을 주신 입법자가 누군지 바라보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절대 거룩하신 분입니다. 우리에게 거룩을 요구하십니다. 우리의 “영혼과 마음과 몸의 순전함을”(animae, spiritus et corporis integritatem)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간음하는 행동에는 음란한(obscoenis) 것도 포함되고, 또 서로 남자가 여자의 모습을 하거나, 여자가 남자의 모습을 하거나, 이런 음란한 것을 다 치장조차도 금하는 것, 이러한 중심에 하나님의 거룩함에 합한 것이 바로 이 계명의 목적인 것입니다. 

[결론]

      이제 이 부분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제5계명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부모 및 윗사람에게 공경하고, 순종하고, 감사를 드림에 있습니다. 
     둘째, 이 5계명의 순종은 주 안에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고 오직 한 주만을 모실 때, 그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함이 부모 공경과 맞닿아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제6계명은 영혼과 육체의 구조로 하나님의 형상을 한 사람을 영혼과 육체의 어느 부분으로든 해하는 것을 금하는 그러한 명령입니다. 단지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웃을 돌보라는 명령을 또한 담고 있습니다.
     넷째, 제7계명은 간음을 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육체의 정절과 함께 영혼의 순결을 명령합니다. 결혼의 연합체는 하나님이 복되고 거룩하게 하시는바, 가정을 이루면 하나님의 뜻 아래 주어지는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자의적인 독신의 은사를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70강 결론


  1. 제5계명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부모 및 윗사람에서 공경, 순종, 감사를 드림에 있습니다.
  2. 이 명령에 대한 순종은 ‘주 안에서’ 해야 하며 그것이 하나님께 이르는 한 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3. 제6계명은 영혼과 육체의 구조로 하나님의 형상을 한 사람을 영혼과 육체 어느 부분으로든 해하는 것을 금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돌보야 함을 명령합니다. 
  4. 제7계명은 단지 간음을 금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육체의 정절과 함께 영혼의 순결을 명합니다. 결혼의 연합체는 하나님이 복되고 거룩하게 하시는바, 가정을 이룸은 하나님의 뜻 아래 주어지는 명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