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2)라는 서언으로 시작됩니다. 이 부분은 전체 십계명에 다 해당하는 도입 부분이 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혹자는 이 부분을 1계명의 일부분으로 다루기도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전체 율법의 서문, [즉]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언약을 맺으실 때 나는 누구고 너희는 누구고[를 말씀하는] 이 부분이 바로 이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논증(argumentum)이 나타납니다. [첫째,] 하나님의 백성에게 순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사셨습니다, 살려 내셨습니다,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되는 그 필연성(necessitas)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이러한 순종을 요구하시되 함께 은혜의 약속(promissio gratiae)을 제시하십니다. 이게 언약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 내셨을 때, 그리고 그 이후에 율법을 주셨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건져 내셔서 생명을 주신 그 은혜 가운데 그들이 살아가야 될 법으로[서], 규범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순종의 필연성 혹은 필요성과 함께 율법의 순종에 따르는 은혜의 약속이 함께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 이와 함께 이 서문에서는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심으로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기 은총을 상기시켜 주심으로 율법을 수행해야 될 하나님의 백성이 기본적으로 은혜에 감사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되는, 그래서 그들의 배은망덕(ingratitudo)을 물리치시는 그것을 서론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통치와 합법적인 지배를 의미한다(Sub nomine Iehovah imperium et legitima dominatio designatur).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8.13.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구원하시는 분이요, 통치하시는 분이요, 모든 것을 이루어 가시는 언약의 하나님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에게서,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있는 [것이라는] 로마서 11장 36절에 그 하나님을 향한 송영이 이 서문과 통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8.14.]
하나님은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언약의 주가 되심을 이야기합니다. 이때 ‘네’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 개개인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교회[로] 삼는 하나님의 자녀들, 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한 몸 된, 연합체 된 이스라엘 그것을 지칭한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도 하나이신데 그 교회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그 순종이 은혜의 순종이므로, 달콤하게 누리는 순종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 자리에 이스라엘 백성을 세우시기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것이 그들의 공로로 인한 것이라면, 아마 시내 산의 율법 순종도 그들의 공로가 요구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공로 없이 홍해를 가르시고, 10가지의 그런 기적을 이루시고, 오직 문설주의 인방의 피를 바라보는 믿음으로 그들을 구출해 내신 하나님은, 생명을 주신 하나님은 생활의 거룩함도 이루신다는 것이죠. 그래서 ‘너는 내 백성이 된다’(렘 31:33)는 것은 ‘내가 생명을 살렸으니 너희도 거룩하게 하시겠다. 생활도 거룩하게 하시겠다’[는] 그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 불멸성이 나타나는 것입니다(마 22:32). [즉,] ‘내가 너희를 나의 백성으로 고른 것은 현세의 삶(vita praesens) 가운데 복(beatitudo) 주시기 위함뿐만 아니라 미래의 삶(vita futura)에 복도 주시기 위한 것이다. 살렸거니와 살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생명도 주시고 생활도 주시고, 우리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 성민으로 삼으시고, 그 거룩한 백성이 자기 계명을 지키게 하시는, 그리하여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 11:45)는 도무지 우리 인생이 스스로 가닿을 수 없는 계명을 주시되, 은혜와 함께, 약속과 함께 율법을 주심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사랑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라기 1장 6절에서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아버지라 하십니다, 주인이라 하십니다. 그것은 무엇을 판단하고 명령하는, 그리고 무엇을 착취하고 빼앗는 그런 악한 주인의 모습이 아니라 은혜를 베푸시고, 하나님의 일을 친히 낳은 자녀를 통하여 이루는 그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보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8.15.]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그 여호와, 그 여호와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요, 그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성전의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면서 그의 백성의 속죄를 받으시고 그의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속죄소 시은좌의, 그러한 지성소의 임재 가운데 계시는 그분이십니다(시 80:1; 99:1; 사 37:16). 이스라엘과 언약(foedus)을 맺으신 언약의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을 물에서 건지고 구속하신 바로 구원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전 생애를 통하여 여호와를 섬기고, 그리고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그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이라고 인정하시는 자들은 모두 바로 아래에서의 육체적인 노예 상태로 예표된 마귀의 멸망의 권세로부터 풀려나게 된다(ita quibus hodie se in Deum esse profitetur, eos omnes iam ab exitiali diaboli potestate asserit, quae illa corporali adumbrata fuit).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8.15.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건짐을 받은 것은 이제 육체에서 해방되어 영적인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세속의 질서, 세상의 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법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귀 사탄의 권세에서 풀려나서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혜의 질서 안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건져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리고 그 계명을 주실 때, 그 계명은 이미 은혜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 그가 친히 이루시는 자비의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이 전제된다는 것입니다.
이 율법의 서론 부분이 십계명 전체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benignitas)과, 그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자비의 부요함(affluentia)과, 우리를 향한 불멸하는(immortalis) 영생의 삶, 이것을 율법을 통하여서 깨닫게 하시고, 우리는 스스로 이룰 수 없지만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는 그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8.16.]
그래서 우리는 유일하신 하나님만 섬겨야 됩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내게 두지 말라”(출 20:3)는 제1계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단일신이 아닙니다. 신이 많은데 그중에 하나를 섬기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유일신입니다. 다른 신은 없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오직 여호와 우리 하나님만 하나님이십니다. 칼빈은 여기에서 ‘오직 내 하나님만 섬기라. 또 다른 신을 내게 두지 말라’[라는] 이 제1계명을 네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설명합니다.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만 네게 두라’는 이 계명이 무엇을 뜻합니까? 첫째로는 경배(adoratio)입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 복종하고, 하나님께 숭배와 예배를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순종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배입니다.
두 번째는 확신(fiducia)입니다. 확신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온전히 의뢰하는, 그리고 하나님께 맡기는, 그래서 그 안에서만 우리가 누리게 되는 평정(securitas)을 뜻합니다. 지혜와 의와 권능과 진리와 선하심이 전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로부터 누린다는 확신이 있어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기도(invocatio)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는 것은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우리에게는 곤고함이 있습니다, 부족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살핌과 도움(ops)을 받아야 됩니다. 그 보루(praesidium)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감사함(gratiarum actio)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서는 하나님의 자녀 됨의 모습은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 하나님이 우리를 건지시고 이 자리에 세우신다. 자녀 삼으시고 그의 규범을 주신다’[라고 고백하며] 감사함으로 찬양을 돌리는 마음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경배, 확신, 기도, 감사함. 경배는 라틴어로 ‘adoratio’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확신은 ‘fiducia’입니다. 하나님께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invocatio’, [즉] 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간구하는 것입니다. 감사함은 ‘gratias agere’, [즉] 미리 된 줄 알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영광을 하나님께 향하여 올리는 것입니다. 경배, 확신, 기도, 감사함, 이 네 가지가 있어야 그것이 오직 하나님만 우리 앞에 두는, 다른 신들은 우리 앞에 두지 않는, 이것을 칼빈은 참 기독교, 참 종교(religio vera)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그(하나님)를 아는 지식에 잠겨서 그의 엄위를 받아들이고, 경외하며, 예배하며, 그가 베푸신 선한 것들과 교통함에 애착을 지니며, 언제든 그의 도움을 찾으며, 그의 사역의 위대함을 인정하고 찬양으로 그것을 송축하는 것을 이 세상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모든 행실의 유일한 목표로 삼아야 한다(cuius[Dei] cognitione imbuti, ad suscipiendam, timendam, colendam ipsius maiestatem, ad amplexandam bonorum eius communicationem, ad opem ubique requirendam, ad recognoscendam laudisque confessione celebrandam operum magnificentiam, in omnibus vitae actionibus, tanquam ad unicum scopum, aspirent).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8.16.
하나님을 아는 올바른 지식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고, 그에게만 붙들려서 애착을 가지고, 꼭 붙들어 그만 바라보고, 그에게만 도움을 찾고, 그 안에서 감사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만 우리 앞에 두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마음을 잃어버리면 우상을 향하여 가고, 다른 것을 의지하는 그러한 우리의 심령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1계명입니다.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내게 두지 말라.’ 이때 “나 외에는”이라는 말은 ‘내 면전에’(coram facie mea), ‘내 앞에’ 다른 것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우리가 나아가게 되는 그 자리, 그것을 하나님이 명령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8.17.]
그래서 이제 이 제1계명 가운데 2계명을 우리가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에 절도 하지 말고, 섬기지도 말라는 것입니다(출 20:4-5). 합법적인 예배(cultus legitmus)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림,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고, 그리고 우리의 그 합법적인 예배는 일체의 미신적인 그러한 더럽혀진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합법적인 예배는 영적 예배(cultus spiritualis)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그래서 ‘우리 몸을 제물로 드리라. 살아 있는 제물로 드리라.’ 그것이 영적 예배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몸을 드린다는 것이 중심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형상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 계명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부분은 우리의 방자함을 억제시켜 불가해한 하나님을 우리의 지각들 아래에 종속시키거나 어떤 외양으로 그를 표상하는 일이 감히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Prior licentiam nostram coercet, ne Deum, qui incomprehensibilis est, sub sensus nostros subiicere, aut ulla specie repraesentare audeamus). 둘째 부분은 우리가 종교라는 명분으로 어떤 형상들을 예배하는 것을 금한다(Secunda vetat ne imagines ullas adoremus religionis causa).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8.17.
우리를 억제시키고 우리 안에 나오는 들끓는 왜곡된 종교심, 타락한 종교심을 우리가 제어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 무엇도 만들어서도 안 되고, 그리고 그것을 섬기거나 예배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확신과 하나님만을 향한 기도와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제1계명에서 보았듯이, 이 하나님만을 향한 경배와 확신과 기도와 감사가 떨어진다면, 그것에서 멀어진다면, 우리는 즉시 우상숭배로 달려가고 말 것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그 유일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우리가 우상을 섬기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8.18.]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출 20:5). 하나님은 자기 자녀가 하나님만 경배하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자녀들을 특별히 보호하시고, 특별히 자라게 하시고 기르시고, 끝까지 인도하십니다. 여기에서 칼빈은 ‘하나님은 우리의 남편(maritus)이다’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남편은 하나여야 됩니다. 그래서 아내와 한 몸을 이루는 남편이 둘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에베소서에서는 교회를 아내로 그렇게 비유하지 않습니까? 교회 그리고 성도는 오직 한 남편, 이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나머지의 것은 다른 것에는 마음을 쏟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진실함으로 장가드신 주님’(호 2:1-20)이라고 칼빈은 호세아서를 생각하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장가드셨다. 그는 우리의 남편이다. 그래서 하나님 외에 다른 남편을 두는 것은 음란한 아내, 간부(姦婦)이다’라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강요』. 2.8.19-21.]
하나님은 우상숭배에 대하여 3-4대의 죄를 갚으신다고 이야기하고, 또 그것을 잘 지키는 자들에게는 또 천대의 복을 내리신다[는] 이런 말씀도 하십니다(출 20:5-6). 이것은 육체적인 상급이 옮겨지거나, 또 저주가 옮겨진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언약의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 계명을 귀하게 여기시는지[를 알게 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경건한 자들의 가정에 대대로 머물 것이다’[라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가르치라고 하고,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에 들으라’, ‘한 분 하나님만을 사랑하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목숨,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이제 이 부분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십계명의 서문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그 택한 백성과 언약을 맺으셔서 자기의 은혜로 구원받고 해방된 그들의 계명 순종을 통하여 영광받고자 하심을 선언하셨습니다.
둘째, 제1계명은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참 종교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확신과 기도와 감사함이 이 1계명에 포함됩니다.
셋째, 제2계명의 형상을 만들거나 섬기는 것을 금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합법적인 예배 영적 예배를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넷째, 하나님은 우리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남편의 역을 감당하시므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간부를 끌어들여서 침상을 더럽히는 <그러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온전한 순종은 만대의 복이 될 것이나, 이것에 대한 위배는 저주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68강 결론
십계명의 서문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그 택한 백성과 언약을 맺으셔서 자기의 은혜로 구원받고 해방된 그들의 계명 순종을 통하여 영광 받고자 하심을 선언합니다.
제1계명은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참 종교의 근본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경배, 확신, 기도, 감사함을 함의합니다.
제2계명은 형상을 만들거나 섬기는 것을 금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합법적인 예배, 즉 영적 예배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남편의 역을 감당하시므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간부를 끌어들여 침상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68강 | 2.8.13-21 (2권 248-261페이지)
제1-2계명 해석
[『기독교 강요』. 2.8.13.]
십계명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2)라는 서언으로 시작됩니다. 이 부분은 전체 십계명에 다 해당하는 도입 부분이 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혹자는 이 부분을 1계명의 일부분으로 다루기도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전체 율법의 서문, [즉]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언약을 맺으실 때 나는 누구고 너희는 누구고[를 말씀하는] 이 부분이 바로 이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논증(argumentum)이 나타납니다. [첫째,] 하나님의 백성에게 순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사셨습니다, 살려 내셨습니다,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되는 그 필연성(necessitas)이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이러한 순종을 요구하시되 함께 은혜의 약속(promissio gratiae)을 제시하십니다. 이게 언약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 내셨을 때, 그리고 그 이후에 율법을 주셨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건져 내셔서 생명을 주신 그 은혜 가운데 그들이 살아가야 될 법으로[서], 규범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순종의 필연성 혹은 필요성과 함께 율법의 순종에 따르는 은혜의 약속이 함께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 이와 함께 이 서문에서는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심으로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기 은총을 상기시켜 주심으로 율법을 수행해야 될 하나님의 백성이 기본적으로 은혜에 감사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되는, 그래서 그들의 배은망덕(ingratitudo)을 물리치시는 그것을 서론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통치와 합법적인 지배를 의미한다(Sub nomine Iehovah imperium et legitima dominatio designatur).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8.13.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구원하시는 분이요, 통치하시는 분이요, 모든 것을 이루어 가시는 언약의 하나님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에게서,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있는 [것이라는] 로마서 11장 36절에 그 하나님을 향한 송영이 이 서문과 통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8.14.]
하나님은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언약의 주가 되심을 이야기합니다. 이때 ‘네’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 개개인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교회[로] 삼는 하나님의 자녀들, 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한 몸 된, 연합체 된 이스라엘 그것을 지칭한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도 하나이신데 그 교회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그 순종이 은혜의 순종이므로, 달콤하게 누리는 순종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 자리에 이스라엘 백성을 세우시기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것이 그들의 공로로 인한 것이라면, 아마 시내 산의 율법 순종도 그들의 공로가 요구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공로 없이 홍해를 가르시고, 10가지의 그런 기적을 이루시고, 오직 문설주의 인방의 피를 바라보는 믿음으로 그들을 구출해 내신 하나님은, 생명을 주신 하나님은 생활의 거룩함도 이루신다는 것이죠. 그래서 ‘너는 내 백성이 된다’(렘 31:33)는 것은 ‘내가 생명을 살렸으니 너희도 거룩하게 하시겠다. 생활도 거룩하게 하시겠다’[는] 그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 불멸성이 나타나는 것입니다(마 22:32). [즉,] ‘내가 너희를 나의 백성으로 고른 것은 현세의 삶(vita praesens) 가운데 복(beatitudo) 주시기 위함뿐만 아니라 미래의 삶(vita futura)에 복도 주시기 위한 것이다. 살렸거니와 살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생명도 주시고 생활도 주시고, 우리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 성민으로 삼으시고, 그 거룩한 백성이 자기 계명을 지키게 하시는, 그리하여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 11:45)는 도무지 우리 인생이 스스로 가닿을 수 없는 계명을 주시되, 은혜와 함께, 약속과 함께 율법을 주심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사랑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라기 1장 6절에서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아버지라 하십니다, 주인이라 하십니다. 그것은 무엇을 판단하고 명령하는, 그리고 무엇을 착취하고 빼앗는 그런 악한 주인의 모습이 아니라 은혜를 베푸시고, 하나님의 일을 친히 낳은 자녀를 통하여 이루는 그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보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8.15.]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그 여호와, 그 여호와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요, 그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성전의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면서 그의 백성의 속죄를 받으시고 그의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속죄소 시은좌의, 그러한 지성소의 임재 가운데 계시는 그분이십니다(시 80:1; 99:1; 사 37:16). 이스라엘과 언약(foedus)을 맺으신 언약의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을 물에서 건지고 구속하신 바로 구원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전 생애를 통하여 여호와를 섬기고, 그리고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그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이라고 인정하시는 자들은 모두 바로 아래에서의 육체적인 노예 상태로 예표된 마귀의 멸망의 권세로부터 풀려나게 된다(ita quibus hodie se in Deum esse profitetur, eos omnes iam ab exitiali diaboli potestate asserit, quae illa corporali adumbrata fuit).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8.15.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건짐을 받은 것은 이제 육체에서 해방되어 영적인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세속의 질서, 세상의 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법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귀 사탄의 권세에서 풀려나서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혜의 질서 안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건져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리고 그 계명을 주실 때, 그 계명은 이미 은혜의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 그가 친히 이루시는 자비의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이 전제된다는 것입니다.
이 율법의 서론 부분이 십계명 전체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benignitas)과, 그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베푸시는 자비의 부요함(affluentia)과, 우리를 향한 불멸하는(immortalis) 영생의 삶, 이것을 율법을 통하여서 깨닫게 하시고, 우리는 스스로 이룰 수 없지만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는 그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8.16.]
그래서 우리는 유일하신 하나님만 섬겨야 됩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내게 두지 말라”(출 20:3)는 제1계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단일신이 아닙니다. 신이 많은데 그중에 하나를 섬기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유일신입니다. 다른 신은 없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오직 여호와 우리 하나님만 하나님이십니다. 칼빈은 여기에서 ‘오직 내 하나님만 섬기라. 또 다른 신을 내게 두지 말라’[라는] 이 제1계명을 네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설명합니다.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만 네게 두라’는 이 계명이 무엇을 뜻합니까? 첫째로는 경배(adoratio)입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 복종하고, 하나님께 숭배와 예배를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순종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배입니다.
두 번째는 확신(fiducia)입니다. 확신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온전히 의뢰하는, 그리고 하나님께 맡기는, 그래서 그 안에서만 우리가 누리게 되는 평정(securitas)을 뜻합니다. 지혜와 의와 권능과 진리와 선하심이 전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로부터 누린다는 확신이 있어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기도(invocatio)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는 것은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우리에게는 곤고함이 있습니다, 부족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살핌과 도움(ops)을 받아야 됩니다. 그 보루(praesidium)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감사함(gratiarum actio)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서는 하나님의 자녀 됨의 모습은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 하나님이 우리를 건지시고 이 자리에 세우신다. 자녀 삼으시고 그의 규범을 주신다’[라고 고백하며] 감사함으로 찬양을 돌리는 마음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경배, 확신, 기도, 감사함. 경배는 라틴어로 ‘adoratio’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확신은 ‘fiducia’입니다. 하나님께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invocatio’, [즉] 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간구하는 것입니다. 감사함은 ‘gratias agere’, [즉] 미리 된 줄 알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영광을 하나님께 향하여 올리는 것입니다. 경배, 확신, 기도, 감사함, 이 네 가지가 있어야 그것이 오직 하나님만 우리 앞에 두는, 다른 신들은 우리 앞에 두지 않는, 이것을 칼빈은 참 기독교, 참 종교(religio vera)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그(하나님)를 아는 지식에 잠겨서 그의 엄위를 받아들이고, 경외하며, 예배하며, 그가 베푸신 선한 것들과 교통함에 애착을 지니며, 언제든 그의 도움을 찾으며, 그의 사역의 위대함을 인정하고 찬양으로 그것을 송축하는 것을 이 세상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모든 행실의 유일한 목표로 삼아야 한다(cuius[Dei] cognitione imbuti, ad suscipiendam, timendam, colendam ipsius maiestatem, ad amplexandam bonorum eius communicationem, ad opem ubique requirendam, ad recognoscendam laudisque confessione celebrandam operum magnificentiam, in omnibus vitae actionibus, tanquam ad unicum scopum, aspirent).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8.16.
하나님을 아는 올바른 지식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하고, 그에게만 붙들려서 애착을 가지고, 꼭 붙들어 그만 바라보고, 그에게만 도움을 찾고, 그 안에서 감사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만 우리 앞에 두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마음을 잃어버리면 우상을 향하여 가고, 다른 것을 의지하는 그러한 우리의 심령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1계명입니다.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내게 두지 말라.’ 이때 “나 외에는”이라는 말은 ‘내 면전에’(coram facie mea), ‘내 앞에’ 다른 것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우리가 나아가게 되는 그 자리, 그것을 하나님이 명령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8.17.]
그래서 이제 이 제1계명 가운데 2계명을 우리가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에 절도 하지 말고, 섬기지도 말라는 것입니다(출 20:4-5). 합법적인 예배(cultus legitmus)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림,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고, 그리고 우리의 그 합법적인 예배는 일체의 미신적인 그러한 더럽혀진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합법적인 예배는 영적 예배(cultus spiritualis)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그래서 ‘우리 몸을 제물로 드리라. 살아 있는 제물로 드리라.’ 그것이 영적 예배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몸을 드린다는 것이 중심을 드리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형상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 계명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부분은 우리의 방자함을 억제시켜 불가해한 하나님을 우리의 지각들 아래에 종속시키거나 어떤 외양으로 그를 표상하는 일이 감히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Prior licentiam nostram coercet, ne Deum, qui incomprehensibilis est, sub sensus nostros subiicere, aut ulla specie repraesentare audeamus). 둘째 부분은 우리가 종교라는 명분으로 어떤 형상들을 예배하는 것을 금한다(Secunda vetat ne imagines ullas adoremus religionis causa).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2.8.17.
우리를 억제시키고 우리 안에 나오는 들끓는 왜곡된 종교심, 타락한 종교심을 우리가 제어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 무엇도 만들어서도 안 되고, 그리고 그것을 섬기거나 예배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확신과 하나님만을 향한 기도와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제1계명에서 보았듯이, 이 하나님만을 향한 경배와 확신과 기도와 감사가 떨어진다면, 그것에서 멀어진다면, 우리는 즉시 우상숭배로 달려가고 말 것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그 유일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우리가 우상을 섬기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 2.8.18.]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출 20:5). 하나님은 자기 자녀가 하나님만 경배하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자녀들을 특별히 보호하시고, 특별히 자라게 하시고 기르시고, 끝까지 인도하십니다. 여기에서 칼빈은 ‘하나님은 우리의 남편(maritus)이다’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남편은 하나여야 됩니다. 그래서 아내와 한 몸을 이루는 남편이 둘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에베소서에서는 교회를 아내로 그렇게 비유하지 않습니까? 교회 그리고 성도는 오직 한 남편, 이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나머지의 것은 다른 것에는 마음을 쏟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진실함으로 장가드신 주님’(호 2:1-20)이라고 칼빈은 호세아서를 생각하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장가드셨다. 그는 우리의 남편이다. 그래서 하나님 외에 다른 남편을 두는 것은 음란한 아내, 간부(姦婦)이다’라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강요』. 2.8.19-21.]
하나님은 우상숭배에 대하여 3-4대의 죄를 갚으신다고 이야기하고, 또 그것을 잘 지키는 자들에게는 또 천대의 복을 내리신다[는] 이런 말씀도 하십니다(출 20:5-6). 이것은 육체적인 상급이 옮겨지거나, 또 저주가 옮겨진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언약의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 계명을 귀하게 여기시는지[를 알게 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경건한 자들의 가정에 대대로 머물 것이다’[라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가르치라고 하고,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에 들으라’, ‘한 분 하나님만을 사랑하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목숨,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이제 이 부분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십계명의 서문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그 택한 백성과 언약을 맺으셔서 자기의 은혜로 구원받고 해방된 그들의 계명 순종을 통하여 영광받고자 하심을 선언하셨습니다.
둘째, 제1계명은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참 종교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확신과 기도와 감사함이 이 1계명에 포함됩니다.
셋째, 제2계명의 형상을 만들거나 섬기는 것을 금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합법적인 예배 영적 예배를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넷째, 하나님은 우리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남편의 역을 감당하시므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간부를 끌어들여서 침상을 더럽히는 <그러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온전한 순종은 만대의 복이 될 것이나, 이것에 대한 위배는 저주가 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68강 결론
십계명의 서문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그 택한 백성과 언약을 맺으셔서 자기의 은혜로 구원받고 해방된 그들의 계명 순종을 통하여 영광 받고자 하심을 선언합니다.
제1계명은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참 종교의 근본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경배, 확신, 기도, 감사함을 함의합니다.
제2계명은 형상을 만들거나 섬기는 것을 금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합법적인 예배, 즉 영적 예배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남편의 역을 감당하시므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간부를 끌어들여 침상을 더럽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