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 [1.9.1-3] 성령의 계시 작용은 성경을 통하여 일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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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1.9.1-3. (1권 268-273페이지)



성령의 계시 작용은
성경을 통하여 일어남



      우리는 『기독교 강요』 1권 6장, 7장, 8장을 통하여서,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령의 감동으로 그 말씀이 주어졌고 기록되었다는 ‘성경의 성령 영감’, 그리고 성경의 권위는 그 저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있다는 그 ‘성경의 권위성’, 그리고 성경은 성령의 내적이고 은밀한 그 감화에 따라서 확정된다는 ‘성경의 내증교리’, 이런 부분을 다루었습니다. 

      이제 이곳 9장에서 칼빈은 성경이 성령과 함께 작용한다는 그 ‘성경과 성령의 관계’에 대한 부분을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을 배척하고 성령만을 강조하는 것은 위험하죠. 말씀이 없는 영의 작용은 당장 영의 분별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비주의로 흘러가거나 극단적 은사주의로 흐르게 될 것입니다. 역으로 성경 말씀만 강조하고 성령의 역사를 등한시한다면 지나친 사변주의, 또한 사색주의, 또 지나친 이성주의에 빠지기 쉬울 것입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함께 작용하므로 그 말씀의 기록인 성경이 우리 안에서 구원의 역사와 계시의 역사와 하나님의 존재와 어떠하심을 우리에게 알릴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는 우리의 경건한 삶의 역사, 예배의 역사를 이룬다고 강조합니다. 칼빈 시대에 프랑스 말로 ‘리베르땅’(Libertine)이라고 해서 ‘자유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경 읽기를 가볍게 여기고, 혹은 냉시하고, 성령의 감동을 강조해서 소위 영의 지시에 따라서, 영의 가르침에 따라서 새로운 성경도 기록할 수 있다고 까지 여겼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극단적 재세례파들 중에 속한 사람들이었는데요.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보혜사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Christi spiritus)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보혜사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 것 삼아 주심’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이고, 또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그 ‘믿음’이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되었다는 그 의미인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으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을 받았고, 그 그리스도의 영은 ‘말씀의 영’이고, 그 말씀의 영이 우리에게 역사할 때 진리를 믿게 되는, 그래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인데, 말씀이 아닌 성령, 혹은 말씀을 떠난 성령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이미 구원의 역사도 없고 생명의 역사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이곳에서 성령의 감동에 따른 것, 그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지만, 말씀이 없는 성령의 역사는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고, 말씀을 떠나서 성령만을 강조하는 이것은 광란에 가깝다, 거의 미친 짓이라고 이렇게 칼빈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신자들 중 그 누구도 성령이 ‘말씀의 영’이라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지난 장에서도 이미 나왔지만, 이사야 59장 21절, 이곳에서 다시 한 번 칼빈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떠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서의 이 부분의 말씀은 새로운 시대, 신약 시대를 여는 아주 중요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새로운 영’, ‘새 시대의 영’, ‘보혜사 성령’,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떠나가지 아니하고,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토록 함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성령과 말씀이 함께 영원히 너희 마음과 입을 떠나지 아니할 것이다.’ 이렇게 예언한 말씀인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으로 다스림을 받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성령으로만 다스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성령은 ‘말씀의 성령’이고, 말씀은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시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므로, 칼빈은 ‘교회가 성령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에 의해서 다스림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셋째 하늘에 이끌려 올라간 신비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디모데의 편지에서 그러한 체험을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13절에 보면, ‘읽는 것에 전념하라.’라고 디모데에게 권면하고 있고, 디모데후서 3장 16절, 17절에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것이 바로 성경의 말씀에 따른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 영은 “스스로 말하지 않고”(요 16:13) 주님 자신이 말씀을 통하여 전하여 주신 것들을 제자들의 마음에 집어넣어 스며들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약속된 영의 임무는, 새롭고 듣지 못한 계시들을 만들어 내거나 새로운 종류의 가르침을 조작하여, 우리가 받아들인 복음의 가르침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권해지는 바로 그 가르침을 우리 마음에 각인시키는 데 있다.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1.9.1.


     하나님의 영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서 주님은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14장 26절 요한복음에서, ‘성령이 임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것과 또 행하신 것, 그것이 생각난다’고도 말씀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약속된 성령은 새롭고, 듣지 못한 계시들을 만들어내거나, 새로운 종류의 가르침을 조작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의 가르침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거나, 그런 복음을 떠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진 ‘믿고 확신한바 네가 누구에게서 들었는가를 기억하라’고(참조. 딤후 3:14) 했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우리가 들었던 그 복음, 다른 복음은 없으니 그리스도의 복음밖에 없는데, 그 복음이 오히려 우리에게 깊이 새겨지도록 하는, 각인시키는 그 역할을 성령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말씀의 영이고, 말씀은 성령으로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열심을 다하여서 성경을 읽고 성경에 청종하는데 우리 자신을 드려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순종의 모습입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과 목숨과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 사랑의 핵심은 예배요, 경건이요, 이웃 사랑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과 율례와 규례와 법도를 쫓아서 하나님을 중심에 두되, 또 이웃에 대한, 원수까지 사랑하는 그러한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때, 우리가 말씀을 순종하는 삶은 그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성령의 감동에 복종하는 삶’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성령이 가장 확실한 표지에 의해서 분별되지 않는다면, 우리 가운데 무슨 권위를 지니게 될 것인가(quam autoritatem habebit apud nos spiritus, nisi certissima nota discernatur)? 성령은 여호와의 목소리에 의해서 아주 분명하게 우리를 위하시는 분으로서 지정되신다.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1.9.2.


성경의 권위는 그 저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 즉 성령의 영감에 있고, 성령은 언제나 성경과 함께 역사하시므로 성경은 성령의 권위를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표지’입니다.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1.9.2. 각주 179.


     그래서 성령이 ‘가장 확실한 표지’로 우리에게 새겨져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온전히 임하고 역사한다면 그 말씀이 임하고 역사하는 가장 확실한 표지가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 ‘감화’,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끄심을 받고, 또 우리가 뜻을 세우고, 또 우리가 열심을 다하는 것은 바로 말씀이 우리 안에 역사하여 열매를 맺는, 그 하나님의 뜻의 역사는 성령의 표지에 의해서 우리에게 가장 강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여호와의 목소리에 의해서 아주 분명하게 우리를 이해하는 분으로서 지정되신다.’ 성령이 우리를 위하신 분이라는 것이 여호와의 목소리에 의해서 지정되는데, 이 목소리가 무엇입니까? ‘목소리’, ‘음성’, ‘말씀’, ‘살아계신 하나님이 내시는 호흡’, 이런 표현들이 다 말씀과 함께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성령이 말씀이 우리 안에 역사한다는 ‘표지’다, ‘가장 확실한 표지’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중에 『기독교 강요』 3권 2장에 가보면, 이러한 믿음을 다루면서 믿음의 세 가지 요소를 다룰 때, 첫째 요소는 ‘말씀의 지식’이고, 둘째, 셋째 요소는 바로 ‘성령의 조명’과 ‘감화’에 따른, 그래서 ‘말씀을 성령의 조명과 감화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라는 그 결론에 이르는데, 지금 여기에 나오는 성령이 말씀이 우리 안에 새겨짐의 가장 확실한 표지라는 말도 이와 다를 바 없는 그러한 교훈이라고 생각됩니다. 


성령이 성경의 저자이시다. 그는 변화할 수도 그 자신과 다를 수도 없으시다. 그러므로 그는 성경에 한 번 자기를 보이신 그대로 영원히 계심이 마땅하다(Scripturarum autor est; varius dissimilisque esse non potest. Qualem igitur se illic semel prodidit, talis perpetuo maneat oportet).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1.9.2.


성경의 불변성은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의 영원한 동일하심에 따릅니다. 

문병호 역, 『기독교 강요』, 1.9.2. 각주 180.


     이러므로 ‘하나님이 성경의 저자’라고 하는 말과 ‘성령이 성경의 저자’라고 하는 말은 결코 부딪히지 않습니다.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 그리고 하나님의 작용, 하나님이 뜻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역사로 기록하셔서 우리가 그 역사로 듣게 하신다고 봤을 때,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성경 말씀의 저자’시고, 그리고 ‘말씀 자체’시고, ‘말씀의 역사’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성령이 성경의 저자이시다. 그는 변화할 수도, 그 자신과 다를 수도 없으시다. 그러므로 그는 성경에 한 번 자기를 보이신 그대로 영원히 계심이 마땅하다.’ 이 말에서 우리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그 기록 당시에 역사했던 성령과, 성경 저자에게 역사했던 성령의 그 감동과,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역사하는 성령의 감동, 그 감동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동일한 성령이 성경 저자에게 머물렀듯이, 성경 독자인 우리에게 그대로 영원히 머물고 계심, 이것을 칼빈이 강조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성경 말씀은 그저 죽이는 조문(條文)에 불과할 것입니다. 성경은 언약의 말씀이고, 율법이든 복음이든 언약으로 언약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요, 음성입니다. 영으로 영을 분별하게 되는 그 말씀이고, 영으로 영으로 작용하는, 성령으로 기록되고 성령으로 작용하고, 성령으로 감화하고, 성령으로 우리가 그 말씀대로 경건한 삶, 예배의 삶에 이르게 하는 그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단순한 조문이 아니라, 죽이는 조문이 아니라, 의문이 아니라, 고린도후서 3장 6절에 나오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말씀을 새겨 두신, 하나님이 그 법을 우리의 마음에 새겨 두신, 예레미야 31장 33절, 그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율법은 그저 죽이는 조문이 아니라, 언약 가운데 법이요, 갈라디아서에 나오지만, 바로 ‘모세의 율법이 430년 전 그 아브라함 언약을 폐할 수 없다.’라고 했듯이, 그 ‘언약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을 통하여서 효과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새겨지고,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새겨질 때, 그 모든 말씀은 ‘구약’은 ‘오실 그리스도를 지시’하고, ‘예표’하고, ‘예언’하고, ‘신약’은 ‘오신 그리스도의 실체를 계시’하고, 그 그리스도의 말씀, 그리스도의 영으로 역사하는 것. 그렇게 본다면 모든 신구약의 말씀이 ‘그 실체를 그리스도’라 하고 있으며, 그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고, 그 말씀은 영혼을 소성시키고 사람들을 지혜롭게 하는, 시편 19편 7절에 나오는 말씀, 그리고 빌립보서 2장 16절에 그 말씀은 바로 ‘생명의 말씀’, 요한일서 1장 1절에 ‘태초로부터 계신 생명의 말씀’인 것입니다. 

     교회는 ‘영의 직분’에 힘써야 됩니다. 고린도후서 3장 8절에 이 영의 직분이 무엇일까요? 이 직분은 곧 ‘말씀의 직분’과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의 직분,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교회의 직분의 핵심이고, 그 말씀은 성령의 말씀이기 때문에, 영으로 영으로 분별되고, 영으로 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영의 직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성경에 새겨두신 그 진리, 이것은 바로 ‘성경의 진리’이고, ‘성령의 진리’입니다. 

     성령은 말씀 외의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말씀에 그 고유한 경의와 고상함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능력’이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조명과 감화, 성령의 감동 가운데 받아들일 때, 수납(受納)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신령한 말씀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신비한 능력의 말씀이요, 신령한 말씀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말씀 자체가 성령의 증언으로 확정되고,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확실성을 연결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말씀이 아주 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 자신’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보좌 우편에서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로 부터 계신 말씀’, 또 요한1서 1장 1절에, 그 ‘생명의 말씀’이, 사도행전 2장 33절, ‘그 말씀이 육신이 되시고, 부활, 승천하시고, 보좌 우편에서 우리에게 영을 내려주신데, 그 영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말씀을 연결시키는 고리가 된다(Mutuo enim quodam nexu Dominus verbi spiritusque sui certitudinem inter se copulavit).’라고 칼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예수를 믿을 때, 성령의 역사가 있고, 말씀의 역사가 있고, 은혜의 역사가 있고, 진리의 역사가 있는, 그래서 ‘예수 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이것을 칼빈은 ‘말씀의 경륜이다,’라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경륜,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이 역사하고, 말씀이 역사하고, 이것이 바로 ‘말씀의 경륜이고, 구원의 경륜이고, 은혜의 경륜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깨닫게 하셨을 때, 그때 영적인 기적으로 그들을 깨닫게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기억하게 했습니다(눅 24:27, 45). 풀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눅 24:32). 이것은 ‘성령의 역사’요, ‘말씀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에서 20절에 보면,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예언은 곧 말씀이라고 할 것입니다. 단지 미래에 대한 예측의 말씀만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가 예언이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바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영의 조명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는 도구이다.’ 이렇게 칼빈이 이야기했습니다. ‘말씀은 주님이 자기 영의 조명을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도구이다(verbum esse organum quo spiritus sui illuminationem fidelibus Dominus dispensat).’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다른 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우리가 듣게 하시고, 순종하게 하시고, 그 말씀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이곳에 두시고, 끝까지 우리를 견인(牽引)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이 부분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로, 성령은 성경의 저자로서 언제나 동일하시므로 새로운 계시나 가르침을 만들어내지 않으십니다. 성령이 성경의 저자들 가운데 내주하셔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신비주의자들, 칼빈시대의 자유주의자들은 잘못된 생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성령은 말씀과 함께 역사합니다. 

      두 번째, 성령은 성경과 함께 역사하고 다스리는데, 그 말씀의 경륜이 성령의 감동으로 수행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성령은 가장 확실한 표지인 성경의 진리에 부착되어 계시고, 성경 말씀에 의하여 성령은 분별되시고, 그리고 성령이 말씀의 권위를 드러내시고, 또 그 권위를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네 번째, 성경은 그 말씀 자체가 성령의 증언으로 확정되며, 성령의 효과적 작정으로 생명의 말씀이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보았듯이, ‘말씀은 주님이 자기 영의 조명을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도구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16강 이번 강의 결론


1. 성령은 성경의 저자로서 언제나 동일하시므로 새로운 계시나 가르침을 조작하지 않으십니다.
     : 성령이 성경의 저자들 가운데 내주하셔서 말씀하십니다.

2. 성령은 성경과 함께 역사하며 다스리십니다. 즉, 말씀의 경륜을 수행하십니다.

3. 성령은 가장 확실한 표지인 성경의 진리에 부착되어 계시고, 그 말씀에 의해 분별되시며, 
    힘을 드러내시며, 권위를 지니십니다.

4. 성경은 그 말씀 자체가 성령의 증언으로 확정되며, 성령의 효과적 작용으로 생명의 말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