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조직신학서” 꽤 도전적인 그러한 제목입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조직신학적으로 칼빈을 공부하는 박사 과정에서부터 계속 관심사가 이 부분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는 칼빈은 그냥 목회자고 또 목양의 어떤 부분, 이런 부분이 주로 또 부각되고, 칼빈의 사상, 또 칼빈주의, 근대 사상에 미친 종교개혁의 영향, 이런 쪽에 많이 관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아직 신학자라고, 개혁신학이라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라고 그렇게 주로 느낌을 받았고요. 그리고 17세기 칼빈주의는 또 너무 교조적으로, 교리적으로 엄정해지고, 그래서 도무지 그러면 뭔가? 칼빈에게서는 시작이 안 됐고, 그다음에 17세기에는 너무 과하고, 이런 것들이 제 인상이었는데, 제가 공부 하면서, 『기독교 강요』나 ‘칼빈신학’을 공부하면서 『기독교 강요』야말로, 그야말로 ‘조직신학서’이다. 그곳에 모든 교리가 개진되어 있고, 그리고 변증되어 있고, 그리고 중요한 것들이 아주 정교하게 그렇게 전개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그동안 꾹 좀 참아왔다가 이제는 제가 이제 『기독교 강요』 마지막 판 번역도 하고, 또 이런 즈음에 제목을 “칼빈의 ‘조지신학서’ 『기독교 강요』”, 세계 신학계에 조금 이러한 의미를 좀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11페이지에 보시면, 책은 독자의 책입니다. 독자를 겨냥해서 책을 씁니다. 그렇다고 해서 독자가 저자의 뜻을 다 읽을 수는 없습니다. 많은 경우 독자들은 저자의 뜻을 오해할 수도 있고, 또 곡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나마 학자들은 저자의 뜻을 잘 드러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독자들은 책만 읽으면 되지만, 학자들은 그 책을 쓴 저자의 배경도 좀 이렇게 공부하게 됩니다. 그래서 ‘칼빈의 신학을 연구한다’이러면 어느 한 작품에 나오는 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칼빈의 전반적인 배경, 또 칼빈의 전체 저술, 이런 것을 함께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2페이지 둘째 문단에, ‘독자는 책을 읽고 질문하지만 학자는 질문을 가지고 책을 읽는다.’ 이런 말을 한번 해봤습니다.
『기독교 강요』는 무슨 책입니까? 『기독교 강요』에 대해서 칼빈이 서문을 몇 차례 이렇게 씁니다. 거기에 1541년 프랑스 초판에 보면, ‘성경 에는 완전한 교리가 담겨 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덧붙이지 말아야 된다.’라고 해서 성경의 교리의 완전성을 이야기하고요. 그리고 ‘『기독교 강요』가 모든 자녀가 성경에 대한 선하고 올바른 이해에 이르는 길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성경에 모든 진리가 있고 그 문의 열쇠를 여는 것이 『기독교 강요』가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진리와 건전한 교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이렇게 서문에서 이런 부분을 많이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1539년 독자에게 드리는 글에서는 ‘이 『기독교 강요』가 교회의 유익을 앞세우고 경건에 대한 순수한 가르침을 풀어 설명하는 데 온 마음을 기울였다.’라고 칼빈이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로 ‘교회의 신학’이고 ‘교회를 위한 신학’이고, ‘경건에 대한 순수한 가르침’이다. 그러니까 단지 사변적 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삶, 경건, 그러한 교리를 지향하고 있다. 이렇게 칼빈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13페이지에 보시면, ‘성경의 요체를 교리 조목별로 배열하여 무엇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어떻게 지향되어야 할 것인가? 이것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기독교 강요』를 썼다.’ 초판 이후로 줄곧 칼빈은 이러한 서문의 입장을 가지고 견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칼빈의 공식 직함은 사실 교회의 교사, 성경 교사입니다. 이제 챕터 2에 내려가서 보겠습니다. 칼빈이 제네바의 부름을 받은 것은 ‘doctor Scripturae’, 바로 성경 교사의 자격입니다. 곧 신학자로서 칼빈은 제네바의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비레(Pierre Viret)가 설교를 했고, 그리고 파렐(Guillaume Farel)이 행정을 했다면, 칼빈은 제네바에서 사실 교리를 담당하는 셋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로서 칼빈은 성경을 가르치고 해석하고 수호했고, 신학자로서 목회자, 주석자, 설교자였고, 신학자로서 성경의 교리 전체를 종합적, 체계적으로 수립하고 변증하는데 일생을 바쳤다.’라고 우리가 칼빈의 생애를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명한 칼빈신학자, 우리 개혁신학자, 벤자민 워필드(Benjamin B. Warfield)는 『기독교 강요』를 ‘개혁교회가 성경의 교리 체계로 들어가는 근본적인 서술을 한 논고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워필드 글들은 꽤 많은데요, 워필드야말로 가장 칼빈을 좋아했던 사람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칼빈에 대한 글들을 많이 쓰기도 하고 좋게 평가하는 것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대표적인 칼빈 학자였던 프랑수아 방델(François Wendel)은 ‘개혁파 개신교의 신학적 대전이다.’ ‘summa’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것을 체계적으로 요약해서 저술한 것이 바로 『기독교 강요』다.’라고 이렇게 이야기했고요.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개혁신학자 겸 역사신학자 윌리엄 커닝햄(William Cunningham)은 칼빈의 작업에 대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체계화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기독교를 완전히 조직한 것이 칼빈의 위대한 고유 업적이다.’ 그래서 칼빈의 가장 큰 업적은 ‘신학을 체계화’하고 ‘조직화’했다. 그리고 ‘『기독교 강요』야말로 기독교 신학사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라고 이렇게 평가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기독교 강요』는 1536년 초판 이후로 초기에는 주로 신경적 구조, 십계명이라든지 사도신경, 주기도문을 해설,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수록해서 전개해 가다가, 이제 1539년 제2판에서부터 조직신학적인 그러한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그의 주해와, 그러니까 주석과 설교에 그러한 글들에 대한 역량과 함께, 또 칼빈은 평생 신학 논쟁을 했거든요. 그 당시에 모든 중요한 논쟁들은 칼빈없이 이루어진 적이 없습니다. 루터란이든, 소치니안이든, 단일신론이든, 로마 가톨릭이든. 그래서 칼빈은 로마 가톨릭, 루터, 재세례파, 반삼위일체론자들, 소치니주의자들, 그다음에 단성중보론자들, 그러니까 모든 그 당대에 논의에, 논쟁에 칼빈이 중심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사실상 뭐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니고요. 한 번도 칼빈이 논쟁에서 진 적이 없습니다. 모든 논쟁을 다 이깁니다, 칼빈이. 그래서 일반계시와 일반은총, 성경의 영감과 증언,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와 경륜, 창조와 섭리,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 언약 체결과 전적 타락 및 원죄 교리, 자유의지 교리, 율법의 본질과 용법, 신구약의 일치와 경륜적 차이, 중보자 그리스도의 위격적 연합과 위격적 사역, 의의 전가와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믿음의 세 가지 요소, 회개, 칭의, 성화의 이중적 은혜, 그리스도인의 자유, 선택과 유기의 이중적 예정, 그리스도의 재림에 따른 성도의 부활과 심판, 그 다음에 교회의 본질, 특성, 표지, 직분, 권세, 그리고 성례에 있어서의 영적 현존, 영적 임재설, 그리고 교회와 국가에 관한 교리적 입장, 이런 것은 가히 칼빈이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교리적 진술을 『기독교 강요』가 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15페이지에 보시면, 『기독교 강요』가 성경의 가르침, 거의 전부를 교리 조목별로 분류하여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변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은 칼빈을 조직신학자로 여기거나, 『기독교 강요』를 조직신학서로 여기기를 꺼려하는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주로 역사적으로 많이 연구되어 온 부분이 있고요. 사실 요새 서구의 칼빈에 대한 관심은 역사적 관심이 사실 많습니다. 그러나 조직신학적, 교리적 관심은 상대적으로 조금 떨어집니다. 우리가 안동에 가면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이다 이러면 주로 역사적으로는 관심을 갖잖아요. 그런 거죠. 자기들의 하나의 문화유산 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면에서 좀 역사적 어프로치가 강하다 보니까 칼빈의 『기독교 강요』의 교리적 이런 부분이 좀 약하게. 혹은 또 칼빈을 한때 많이 연구했던 사람들이 다 바르티안들이었어요. 칼 바르트(Karl Barth)가 신학 강의를 시작할 때 『기독교 강요』를 가지고 시작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또 『기독교 강요』로 왜곡하는 바르트 신학에서 그런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사실 『기독교 강요』를, 칼빈의 신학을 정통 우리 교리적 입장에서 잘 이렇게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작품들은 손에 꼽을 만큼 적습니다, 생각 외로. 그래서 이런 부분들에 우리가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 이제 챕터 세 번째 입니다. 15페이지에요. “소위 ‘비평 전 주해’ 문제: 칼빈신학은 조직신학 일 수 없는가?” 이 부분은 제가 조금 그냥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데이비드 스타인메츠(David C. Steinmetz)라는 듀크 신학교에 그러한 교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이코 오버만(Heiko Oberman), 스타인메츠, 그 다음에 리차드 멀러(Richard A. Muller), 이렇게 이제 계보가 형성되거든요. 그리고 멀로, 톰슨, 뭐 그쪽, 수산 슐라이너, 또 비얼마, 다 스타인메츠 제자들입니다. 스타인메츠 학파, 사단이라고도 하고. 데이비드 스타인메츠가 사실 옥스포드 시리즈를 다 주관하고 있죠. 근데 요새는 인제 은퇴하고 했지만은. 이 데이비드 스타인메츠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가 하면, ‘성경해석이 비평 전 주해로 돌아가야 된다.’ 이겁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경 비평이 자유주의 신학과 함께 19세기의 시작되잖아요. ‘비평’이란 말은 성경이 잘못된 곳이 있다는 것이거든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 이전에는 성경이 틀렸다고는 이야기 안 했어요. 내가 성경을 바로 믿는 다고 이야기했지. 그러나 이제 19세기의 비평 신학으로부터는 성경이 틀렸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하거든요. 그러니까 그때, 성경 비평 시대 이후에 주해 방법에서 다시 돌아가야 된다, 이전으로, 이전으로 돌아가서 칼빈을 봐야 된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성경 비평 이전으로 돌아가서 칼빈을 봐야 된다. 자, 이것은 맞습니다. 이것은 맞습니다. 현대적 관점에서 칼빈을, 현대 비평학적 관점에서 칼빈을 본다는 것은 분명히 무리인 것은 맞습니다. 자, 이것은 오케이입니다. 그러나 데이비드 스타인메츠는 역사학자입니다. 그다음 이야기가 중요한데, 오늘날 조직신학자들은 전부 바르트나 핫지나, 여러분들 18페이지를 보십시오. 18페이지 셋째 문단에 제가 인용한 곳에 보면, 셋째 문단입니다, 18페이지에, “칼빈을 현대화하면서 그의 사상에 대한 어느 정도의 왜곡은 불가피하다. 칼빈은 중세 이후 가톨릭교회에서 양육된 신학자로서 핫지와 바르트와 같은 전통적 개신교인들의 세계에 편안할 수 없다.” 자, 이 말이 상당히 이게 참 어려운 이야기고요. 깊이 파고 들어가야 될 이야기인데, 첫째, ‘칼빈의 신학이 중세 후기 가톨릭 교회와 연관성을 갖는다.’ 이 역사 신학자들의 소위 컨티뉴이티 문제입니다. 칼빈의 신학도 그냥 시대의 산물이라고 보는 거죠. 이런 면에서는 사실상 칼빈에 대한 이해가 조금 신학적 이해라기보다 역사적 이해의 연속성 혹은 불연속성 그정도에 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보면 ‘핫지와 바르트와 같은 전통적 개신교도’라고 했는데, 핫지(Charles Hodge)와 바르트를 우리는 같이 볼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역사학자들의 눈에는 찰스 핫지나 칼 바르트나 같이 보이는 겁니다. 다 이들은 그냥 칼빈을, 칼빈의 작품을 신학화 했다, 조직신학화 했다, 그것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습니다. 바르트는 바로 읽지 못했습니다, 칼빈을. 그래서 리차드 멀러가 신정통주의자들이 칼빈을 읽지는 않고 이용만 했다. 그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바르트와 핫지, 모든 개신교의 정통 조직신학자들이 칼빈을 이용한 것은 아닙니다. 사변적으로 풀어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말인가 하면, 칼빈의 신학을 조직신학화한다는 자체를 거부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역사학자들은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조직신학이 뭐가 필요 있어 라는 말도 잘못하면 나올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그래서 역사신학적 어프로치로 조직신학 전체를 이야기 해 버리려고 하는 이런 것은 상당히 위험하거든요. 이런 것들이 사실상 우리가 면도칼로 그걸 나누어야 됩니다. 제가 미국에 유학가서 제일 처음에 스타인메츠가 강의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칼빈신학교에 와서. 그 다음에 리차드 멀로 교수님한테 한 과목을 들었습니다. 리처드 멀로 교수님 계셨고, 저는 조직신학을 공부하러 갔지만. 그때 저에게 딱 느껴지는 아젠다가 바로 그런거였거든요. 조직신학과 역사신학의 경계선은 어딘가? 그리고 굳이 그것을 분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왜 조직신학이 필요한가? 이런 부분들. 오늘 김규섭 교수님 또 성경신학에 대해서도 말씀하시겠지만. 또 성경신학이면 다 되는가? 편집비평학자들이 어떤 경향을 가지고 성경을, 성경 주해를 전개해 나가면 그것이 조직신학을 대체할 수 있는가? 이런 것들은 우리가 심각하게 질문을 던져봐야 되거든요.
그래서 스타인메츠 부분에, 15페이지에 보시면요. 스타인메츠에, 다시 15페이지 돌아가시면, “칼빈의 주요 직무는 성경해석이었다. 교리신학은 주해로부터 비롯되었고 주해에 종속되어 있었다.” 이렇게 전제하거든요. 언뜻 지나가면서 보면 틀린 말이 아닙니다. 성경을 잘 주해해야 교리가 나오죠. 그러나 여기에는 어떤 경향을 가지고 있느냐? ‘교리가 주해에 종속되었다.’ 이 말이 좀 과한 말입니다. 그래서 칼빈의 모든, 『기독교 강요』나 칼빈의 신학적 작품들은 교리주해 나왔다. 이렇게 스타인메츠가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벌써 틀린 이야기입니다. 사실상 칼빈의 작품들은 주석은 로마서 주석이 1541년에 나오고, 45년에 나오거든요. 근데 『기독교 강요』는 벌써 1535년에 쓰고 36년에 나옵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교리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제1차 신앙교육서”는 1537년, 38년에 나오거든요. 그렇게 보면 그게 벌써 어폐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먼저 주석을 하고, 먼저 설교를 하고, 그것을 집산해서 교리화 됐다라고 말하기 쉽지만, 사실상 교리적 관점 가운데 주석했다라고 말할 수도 있잖아요. 교리적 관점 가운데 로마서 주석이 나왔다. 여러분, 무엇이 앞섭니까? 무엇이 달걀이고 무엇이 계란입니까? 보통 우리가 쉽게 말해서, ‘뭐 교리, 교리, 이야기 해. 성경이면 되지.’ 그러나 성경이면 되지 하는 그 성경은 무슨 기준으로 읽습니까? 내 마음대로 읽습니까? 그것은 소위 묵상 신학이지요. 그건 위험합니다. 그거야말로 가장 위험합니다. 내 생각이 맞고 나에게 감동이 되면 그것이 별문제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바로 그게 ‘헤르시’(heresy)의 기원이거든요. 그게 이교의, 이단의 기원이거든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코 리스판시브하게, 서로 교호적으로 바라보는 정도는 우리가 좋지만, 그러나 교리가 주해에 종속되었다라고 말하는 정도까지 말은 상당히 이거는 경향을 가지는 이야기거든요. 이건 조심해야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가 요새 신복음이다, 이런 말을 쓰기도 하고, 이렇게 이야기 할 때, 그런 경향 같은 거 있잖아요. 전에 알파코스다, 이런 걸 이야기 할 때도, 알파코스도 전부 성경이 인용한다. 그런데 무슨 기준으로 성경을 인용하냐 이 말이죠. 그 니키 검블(Nicky Gumbel)이라는 알파코스를 만든 사람이 내가 보기에 이것도 성경적이다, 저것도 성경적이다. 그러다 보니까 솔제니치 작품의 “암병동”에 나오는 그 가르침도 성경적이다. 솔제니치는 무신론자임에도. 그러면 무엇이 성경적이냐? 이 말이에요. 여기에서 교리와 우리가 주해에 그러한 소위 면도칼을 갖다 데야 된다 이 말이에요. 날카롭게 그 부분을 바라보아야 됩니다. 그래서 스타인메츠나, 어떻게 보면 스타인메츠 학파에 대해서 제가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상당히 그쪽 분들은 쓰라릴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이런 말을 우리가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16페이지에 마지막 문단에 보면, ‘스타인메츠는 칼빈이 성경을 주해함에 있어서 멜란히톤(Philip Melanchthon)과 부써(Martin Bucer)의 단점을 지양하고 신학적 주제를 빠지지 않고 다루되 장황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간결함(brevitas)과 유익함(facilitas)’, 이것은 칼빈이 가장 많이 이야기한 것이거든요. 그리고 마지막, ‘그의 주석과 설교의 영향이 커졌음을 볼 때, 주해에 종속되어 있었던 것이 『기독교 강요』다.’라고 이렇게 주장하는데, 저는 이 말은 조심해야 된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언뜻 틀린 건 아니에요. 맞습니다. 말씀대로 교리가 생성되죠. 맞습니다. 말씀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교리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어떤 주해에 교리가 종속되었다는 이런 표현은, 주해는 뭐를 기준으로 주해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텍스트(text)는 콘텍스트(context) 안에 텍스트가 있지 않습니까? 텍스트를 짜맞추고 어느 한 텍스트를 읽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봤을 때요.
그래서 17페이지에 둘째 줄, 스타인메츠가 칼빈의 교리신학은 주해로부터 비롯되었고 주해에 종속되어 있다라고 할 때, 그 주해는 ‘비평 전 주해’(precritical exegesis)다. 그래서 스타인메츠 식으로 이야기 하면 19세기 이후의 모든 조직신학은 하치든, 바르트든 전부 다 칼빈을 오해하는 겁니다. 그렇게 들릴 수가 있다 이 말이에요. 어떻게 보면 바르트가 칼빈의 리바이벌이라고 하거든요. 칼 바르트 밑에 제자들을 전부 바르트는 칼빈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게 했어요, 칼 바르트가. 그렇기 때문에, 한때 그냥 바르티안들입니다, 전부 다, 칼빈 학자들이, 주류 학자들이. 그러니까 그런 경향이 있으니까 아마 스타인메츠가 조금 바르트식으로 다 칼빈을 곡했다라고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최소한 찰스 핫지나 워필드나 바빙크나, 또 오늘날 우리 한국의 조직신학자들이나, 이런 사람들을 그 자리에 넣을 수는 없다 이 말이죠. 우리는 어거스틴(Augustinus)과 칼빈과 이러한 정통성 가운데서 교리적인 그러한 이해를 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스타인메츠는 성경의 영감일라든지 무오라든지, 또 칼빈이 말했던 성경의 자증성, 스스로 말씀은 증거한다든지, 이런 것을 강조하면 조직신학적인 그런 체계와 맞지 않다라고 자꾸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말이에요. 그건 아니다 라는 거죠. 우리는 성경 영감을 인정하고, 성경 무오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오하다. 이게 무오하다는 것이 무모한 것이 아니라는 거죠. 성경 무오가 조직신학적이라는 것이죠. 체계적이라는 것이죠. 그 가운데 신학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성경은 무오함이, 무오하다, 성경은 틀린 것이 없다, 무슨 완전축자영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것은 비 신학적이다. 그래서 현대의 개혁신학자들조차도 칼빈을 곡해하고 있다. 이렇게 말한다면. 그래서 찰스 핫지와 바르트를 같은 자리에 놓는다면 그것은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죠. 사실 제가 리차드 멀러 교수님 만났을 때 이 부분이 가장 말하기 어려웠던 부분이에요. 그래서 제가 리차드 멀러 교수님 하고 박사과정 안 한 것입니다, 사실은. 그분은 역사학자고요. 역사학이 틀린 게 아니라,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는 좀 다른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 그래서요, 19페이지에, “『기독교 강요』에 대한 조직신학적 연구”. 사실 『기독교 강요』에 대한 조직신학적 연구는 저는 개인적으로 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에게 더 많이 해야 된다. 마치 칼빈의 연구를 끝난 듯이 생각하지 말자. 더 많이 해야 된다, 정말. 우리, 그렇게 생각보다 기독론 몇 개 없다. 글이 몇 개 없거든요, 사실상. 그러니까 많이 연구해야 되는데. 『기독교 강요』는 ‘교훈적’, ‘고백적’, ‘변증적’ 특징을 갖는다. 저는 항상 이렇게 칼빈의 신학을 세 가지, ‘교훈적’이라는 말은 전체 성경의 가르침을 전개했다. ‘고백적’이란 말은 그것을 사변적으로 전개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으로. 그래서 내가 믿지 않는 것은 가르치지 않고 배우지 않는다. 그런 고백적인 경향. 그리고 ‘변증적’이라는 것은 신학 논쟁이나 이런 것을 통해서 그렇게. 『기독교 강요』에는 다 들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요, 신학 논쟁들이.
그래서요. 20페이지에 보시면, 그 찰스 팔티(Charles Partee)라는 분, 둘째 문단에 에밀 듀메르고(Emil Doumergue), 또 프랑수아 방델, 또 최근에도 데이비드 홀(David W. Hall)이나 피터 릴벡(Peter A. Lillback), 릴벡은 여러분들 아시죠. 그 다음에 빌헬름 니이젤(Wilhelm Niesel)이나 헬름(Paul Helm), 어쨌든 조직신학적 연구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뭔가 정통적, 요새 예컨대, 삼위일체론, 또 요새 많은 신학적 논의가 되는 영원한 나심, ‘Eternal Generation’, 이런 논지에 들어가면 칼빈은 그냥 한 줄밖에 안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우리가 좀 많이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개혁신학의 어떤 조직신학적 입장을 이야기 할 때, 칼빈을 좀 더 귀하게. 예컨대 삼위일체론에서 칼빈을 뺄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제가 개혁신학의 삼위일체론이러면 워필드의 삼위일체론이 당장 생각이 나는데요. 워필드의 삼위일체론이 바로 칼빈의 삼위일체를 다룬 거거든요. 그게 워필드의 삼위일체론이거든요. 그러니까 이렇게 본다면 워필드가 100년 전이지 않습니까? 오히려 100년 전의 칼빈에 대한 조직신학적 연구에 못 미치고 있다, 오늘날 경향이. 그래서 좀더 우리가 교리적 연구나 이런 것을 심화시켜야 되고, 또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 강요』가 제대로 보인다. 그것이 제가 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었습니다.
21페이지에 보시면, 『기독교 강요』가 조직신학 체계를, 1539년인 제2판에서부터 갖추었는데요. 이러한 『기독교 강요』의 조직신학적 체제의 선구적인 작품이 바로 ‘신앙교육서’입니다. “제1차 신앙교육서”. 제1차 신앙교육서는 문답식이 아닙니다, 칼빈은. 서술식입니다. 이 작품은 정말 귀한 작품이라고 저는 여기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번역이 됐습니다마는. 그리고 그 마지막 1559년 『기독교 강요』는 사도신경의 순서를 따른다는 점에서 신경적이고, 또 교리 조목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앙교육적이며, 또 로마서의 영향도 분명히 나타납니다.
그리고 22페이지에, “칼빈신학: 『기독교 강요』에 개진된 교리적 요체”인데요. 칼빈의 신학의 소위 중심 교리가 무엇인가? 라는 논의는, 요새는 조금 덜하지만, 제가 미국에 처음 갔을 때만 해도 여전히 강한 논의였습니다. 칼빈신학의 중심 교리가 뭐냐? 뭐 예정론이냐, 삼위일체론이냐,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냐, 그런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왜 칼빈신학의 중심 교리, 소위 ‘센츄럴 도그마’(central dogma)에 대한 논의가 이렇게 많으냐? 그것은 사실 칼빈이 모든 성경을 다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거스틴은 ‘오직 은혜’, 느껴지거든요. 어거스틴 작품 읽어보면 ‘그라티아’(gratia)가 느껴집니다. ‘오직 은혜 신학자’, 이건 맞습니다. 또 루터는 ‘오직 믿음’ 강조한 것, 로마서 주석이나, 맞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보면 뭘 하나를 강조했다고 보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이것이야말로 ‘리얼 칼빈’이다. 왜냐? 모든 성경이 다 중요하다. 그게 이제 우리가 강해 정신 아닙니까? 모든 성경이. 루터는 어떤 구절은 길게, 그리고 어떤 건 빠뜨리고, 또 어떤 성경은 귀하게, 또 어떤 성경은 좀 못하게 알다시피, 야고보서는 지푸라기다 이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칼빈은 모든 성경이 다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칼빈에게 있어서 중심 교리는 없다는 게 제 이야기, 제 답입니다. 칼빈에게 있어서 중심 교리는 없다. 그래서 굳이 저보고 이야기 해 보라고 그러면,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칼빈의 중심 교리라 해가지고 그냥 쭉 14가지를 써봤습니다, 한 문장으로. 그래서 제가 한 문장으로 말해보겠습니다 하고는 그냥 한 두 페이지를 썼습니다. 그게 인제 여기 23페이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칼빈신학이 재미있습니다, 여러분들, 되게 재미있습니다. 23에서 25페이지까지, 칼빈신학의 중심 교리를 저에게 말하라면, 이 14가지를 이야기해 보겠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 참조해 주시고요.
25페이지에 보면, “칼빈신학에 대한 조직신학적 해석과 이해가 요청된다.” 여기에, 그래서 저의 논제는 칼빈의 신학은 17세기 칼빈 신학자들에 의해서 비로소 신학화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칼빈의 칼빈신학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제 주장입니다. 칼빈의 칼빈신학. 그것의 계승, 심화, 그것이 17세기이다. 그렇게 저는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26페이지에 보면, 오늘날 가장 대표적으로 한 두 가지 제가 논제를 잡아봤습니다. ‘제한속죄’와 ‘믿음’에 관한 부분인데요. 26페이지에, 칼빈의 제한속죄론에 대해서 학자들의 논의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제한속죄라는 것은 바로 택한 받은 사람만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가 그들만을 위한 것이다. 여기에 핵심이 있지 않습니까? 이게 ‘리미티드 아톤먼트’(limited atonement)인데요. 그 칼빈의, 예컨대 26페이지에 보시면, 리차드 멀러, 멀러 교수님이 칼빈의 요한일서 2장 1절, 2절 주석을 인용하면서, 사실상 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스콜라신학의 영향이 좀 남아 있고. 그런데 대체로 제한속죄는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건 인제 뭔가 하면, 성경 주해나, 이런 것을 어느 부분을 따와서 칼빈은 모호하다, 이렇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그리고 27페이지에 보면, 로저 니콜(Roger Nicole), 니콜 같은 사람은 개혁신학자 아닙니까? 그런데 ‘칼빈의 제한속죄에 대한 입장을 다룬 많은 논문이 있지만, 관점 자체가 다양하고 해석의 취지나 의도가 달라서 일의적인 결론에 이룰 수 없다.’ 이렇게 또 이야기 하고 있어요, 니콜이. 이 분은 뭐 아무 말도 안 한 거와 똑같아요. 제한속죄에 대해서 논문을 하나 길게 썼는데. 왜 그럴까요? 전체를 안 보니까 그런 거예요. 교리적으로 안 읽으니까 그렇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제가 여기에서 제안했습니다. 둘째 문단, 제한속죄에 대한, 리미티드 아톤먼트에 대한 칼빈의 입장을 우리는 다음과 같이 조직신학적 접근을 해야 됩니다. 첫째, 이중 예정론을 전개하면서 공로 없는 은혜, 빚진 형벌, 마땅한 형벌. 그래서 이렇게 봤을 때, 이중 예정론에 기초했을 때, 그리스도의 공로는 택함 받은 사람들만을 위한 것입니다. 둘째, 중보자 그리스도의 위격적 연합에 대한 속성교통론에 따르면, 신성에 따라서, 인성에 따라서. 인성에 따라서 죽으시고 값을 치르신 것은 바로 택함 받은 사람들만 위한 것입니다. 어떤 보편적, 추상적, 은유적 값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이. 그래서 이것은 제한속죄라는 개념과 위격적 연합 교리, 신인양성의 위격적 연합 교리가 같이 가거든요. 그리고 셋째, 회개, 중생, 칭의 등의 요소에 봤을 때 의의 전가가 없으면 칭의도 없고 성화도 없습니다. 개혁신학의 이중 은총론은 의의 전가, 의의 전가는 그리스도의 것을 내 것 삼아 주는 것인데, 의의 전가가 없이 구원이 없다고 봤을 때,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택함 받은 사람들만 위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넷째, 실제로 그러면 성경 구절은, 이들은 성경 구절을 덜 파악 한 거죠. 이런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넓게 성경 구절을 바라보면, 디모데전서 2장 5절,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하나요 하는 그 부분 아닙니까? 디도서 2장 11절, 또 우리를 대신하여 자기를 주심, 2장 11절에서 2장 14절까지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디도서에. 이 부분에 보면 칼빈은 이렇게 주석하고 있어요. ‘삶의 다양한 계층들이나 종류들’, 성경에서 모든 사람이라고 한 것은 모든 사람이란 뜻이 아니라 어떤 계층의 사람이든 어떤 민족의 사람이든 그걸 이야기한다는 것이에요. 전부라는 뜻이 아니라. 그래서 ‘그리스도의 의는 어떤 민족이나 인종이나 계층에 무관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 그러나 모든 사람은 아닌.’ 그래서 28페이지에 셋째 줄 보시면, ‘누구든지 구별 없이 구원을 얻지만, 예외 없이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다.’ 이게 맞지 않습니까? 누구든지 구별 없단 말은 한국 사람도 구원받고, 일본 사람도 구원받고, 저 사우디 아라비아 사람도 구원받고, 택함만 받았다며, 그러나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이렇게 해석을 해 들어가면 제한속죄에 대해서 칼빈의 입장이 모호 하다든지, 이러한 이론은 나올 수가 없는 겁니다. 정확한 제한속죄론에 서 있는 것이죠, 칼빈이. 이런 것이 아까 스타인메츠 식으로 너무 주해만 가지고 전체를 보지 않고 몇몇 구절만 가지고 봤을 때 전혀 다른 결론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그래서 그냥 주해만 가지고 모호하다, 모호하다 이런 말들을 쓰고 이런 것들은 아니다. ‘믿음’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에 대한 것도 ‘칼빈의 믿음은 중세적 믿음관을 가지고 있다’라고 이야기 하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믿음은 구원의 믿음이고, 칼빈은 분명히 믿음으로 생명을 얻고 생활도 얻고, 칭의와 성화가 다 오직 믿음으로. 그리하여서 이중적 은총론을 전개하거든요, 『기독교 강요』 3권 11장에서 18장까지. 그런 것을 봤을 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칼빈이 말하는 믿음은, 아까 말씀드렸던, 의의 전가, 또 언약적 전가, 그것에 기초한 구원의 믿음입니다. 어떤 토마스 아퀴나스적인 자연신학적 믿음이 아니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은 분명히 중세적 관점에 믿음관을 가지고 있었다라는 것은, 물론 영향은 받겠죠, 어떤 부분에요.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순 없다. 그것을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 30페이지에, 이제 제가 3분 남았는데요. 간략하게 말씀하겠습니다. 조직신학이라는 말은 일의적으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성경의 가르침 전체를 교리 조목별로 체계적으로 다룬다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이 말의 뜻은 성경 주해와 조직신학이 이분법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혁신학자들은 정통 신학을 가르칠 때 교리라는 말이 결코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되는 사변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칼빈이 가장 금한 것이 바로 사변적, 그러니까 로마 가톨릭을 비판할 때 항상 사변적 신학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칼빈의 신학은 철저히, 우리 개혁신학은 성경 주해적 신학입니다. 그래서 그 밑에 보시면, 마지막 문단, 칼빈은 교리 조목별로 『기독교 강요』를 조망하면서 제 1권 160절의, 쭉 제가 나열했습니다. 여기선 제가 읽지는 않겠습니다. 전 교리를 망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독교 강요』에. 쭉 교리를 제가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31페이지에 보시면, 셋째 문단, 필자는 이번에 1559년 라틴어 최종판 『기독교 강요』를 번역하면서, 제가 『기독교 강요』를 번역하면서 1277절의 절의 제목을 새로 달았습니다. 칼빈은, 4권 80장 1277절인데요, 『기독교 강요』가, 권, 장까지는 제목을 답니다 만은 절은 제목을 달지 않았습니다, 칼빈이. 그러니까 독일의 바르트 신학자 오토 베버(Otto Weber)가 달았거든요, 절 제목을. 그런데 또 미국에서도 베틀즈(Ford Lewis Battles)가 바로 그냥 그 절 제목을 차용해서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기독교 강요』 1권 1장 1절부터 절 제목이 칼빈의 신학과 맞지 않습니다. 그 제일 처음에 뭡니까? 바로, ‘우리를 알아야 하나님을 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절 제목이. 이건 바르트적 입장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번 기회에 1277절의 제목을 새로 다 붙였습니다. 그리고 절 제목에 단지 소제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제가 들어가도록 그렇게 했고요. 각주가,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 강요』에 각주 작업은 사실 1960년대에 지금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2020년 현 단계에서 각주 작업을 했습니다. 그래서 각주가 한 4,000개, 5,000개 들어 있는데요. 그것도 우리가 유익하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각주 작업이나 이런 것은 주로 맥닐이 했거든요, 존 티 맥닐(John T. McNeill)이나 이런 사람들이 일단 역사학자고, 유니온 신학교 교수였거든요, 뉴욕에. 그러다 보니까 각주 작업이 신학적 작업이 없고. 그러니까 옛날에 우리 『기독교 강요』에는 칼빈에는 성경 무오가 없다, 행위 언약 사상이 없다, 전부 다 다른 것으로 각주를 붙여 놓은 것을 우리가 읽었습니다, 옛날에. 그러나 이제는 다 잘못된 것은 제가 해서 각주를 하고, 또 마지막에 그렇게 그 용어집도 실었습니다.
32페이지에 보시면, 마지막 네 줄, 우리는 칼빈을 ‘조직신학자로서, 『기독교 강요』를 조직신학서로서 합당하게 바라보게 되며, 칼빈주의자들과 ’맞서는’(against) 칼빈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안에’(with-in) 있는 칼빈을 만나게 되고요. 『기독교 강요』는, 무엇보다 그 1559년 최종판은 이러한 칼빈을 그려내는 최고의 붓(筆)이자 최고의 묵(墨)이라 할 것이다.’라고 이렇게 결론을 지었습니다.
한국칼빈-개혁신학연구소
제1회 정기학술세미나
제1발표 | 문병호 박사
칼빈의 ‘조직신학서’ 『기독교 강요』
: 필자의 1559년 라틴어 최종판 번역에 즈음해서
• 세미나 논문 pdf 자료 링크
: https://drive.google.com/file/d/1gkoDu2sFJOXY7fGByQ0e_dXCbORMu2gE/view?usp=drive_link
“칼빈의 조직신학서” 꽤 도전적인 그러한 제목입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조직신학적으로 칼빈을 공부하는 박사 과정에서부터 계속 관심사가 이 부분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는 칼빈은 그냥 목회자고 또 목양의 어떤 부분, 이런 부분이 주로 또 부각되고, 칼빈의 사상, 또 칼빈주의, 근대 사상에 미친 종교개혁의 영향, 이런 쪽에 많이 관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아직 신학자라고, 개혁신학이라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라고 그렇게 주로 느낌을 받았고요. 그리고 17세기 칼빈주의는 또 너무 교조적으로, 교리적으로 엄정해지고, 그래서 도무지 그러면 뭔가? 칼빈에게서는 시작이 안 됐고, 그다음에 17세기에는 너무 과하고, 이런 것들이 제 인상이었는데, 제가 공부 하면서, 『기독교 강요』나 ‘칼빈신학’을 공부하면서 『기독교 강요』야말로, 그야말로 ‘조직신학서’이다. 그곳에 모든 교리가 개진되어 있고, 그리고 변증되어 있고, 그리고 중요한 것들이 아주 정교하게 그렇게 전개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그동안 꾹 좀 참아왔다가 이제는 제가 이제 『기독교 강요』 마지막 판 번역도 하고, 또 이런 즈음에 제목을 “칼빈의 ‘조지신학서’ 『기독교 강요』”, 세계 신학계에 조금 이러한 의미를 좀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11페이지에 보시면, 책은 독자의 책입니다. 독자를 겨냥해서 책을 씁니다. 그렇다고 해서 독자가 저자의 뜻을 다 읽을 수는 없습니다. 많은 경우 독자들은 저자의 뜻을 오해할 수도 있고, 또 곡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나마 학자들은 저자의 뜻을 잘 드러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독자들은 책만 읽으면 되지만, 학자들은 그 책을 쓴 저자의 배경도 좀 이렇게 공부하게 됩니다. 그래서 ‘칼빈의 신학을 연구한다’이러면 어느 한 작품에 나오는 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칼빈의 전반적인 배경, 또 칼빈의 전체 저술, 이런 것을 함께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2페이지 둘째 문단에, ‘독자는 책을 읽고 질문하지만 학자는 질문을 가지고 책을 읽는다.’ 이런 말을 한번 해봤습니다.
『기독교 강요』는 무슨 책입니까? 『기독교 강요』에 대해서 칼빈이 서문을 몇 차례 이렇게 씁니다. 거기에 1541년 프랑스 초판에 보면, ‘성경 에는 완전한 교리가 담겨 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덧붙이지 말아야 된다.’라고 해서 성경의 교리의 완전성을 이야기하고요. 그리고 ‘『기독교 강요』가 모든 자녀가 성경에 대한 선하고 올바른 이해에 이르는 길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성경에 모든 진리가 있고 그 문의 열쇠를 여는 것이 『기독교 강요』가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진리와 건전한 교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이렇게 서문에서 이런 부분을 많이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1539년 독자에게 드리는 글에서는 ‘이 『기독교 강요』가 교회의 유익을 앞세우고 경건에 대한 순수한 가르침을 풀어 설명하는 데 온 마음을 기울였다.’라고 칼빈이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로 ‘교회의 신학’이고 ‘교회를 위한 신학’이고, ‘경건에 대한 순수한 가르침’이다. 그러니까 단지 사변적 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삶, 경건, 그러한 교리를 지향하고 있다. 이렇게 칼빈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13페이지에 보시면, ‘성경의 요체를 교리 조목별로 배열하여 무엇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어떻게 지향되어야 할 것인가? 이것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기독교 강요』를 썼다.’ 초판 이후로 줄곧 칼빈은 이러한 서문의 입장을 가지고 견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칼빈의 공식 직함은 사실 교회의 교사, 성경 교사입니다. 이제 챕터 2에 내려가서 보겠습니다. 칼빈이 제네바의 부름을 받은 것은 ‘doctor Scripturae’, 바로 성경 교사의 자격입니다. 곧 신학자로서 칼빈은 제네바의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비레(Pierre Viret)가 설교를 했고, 그리고 파렐(Guillaume Farel)이 행정을 했다면, 칼빈은 제네바에서 사실 교리를 담당하는 셋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로서 칼빈은 성경을 가르치고 해석하고 수호했고, 신학자로서 목회자, 주석자, 설교자였고, 신학자로서 성경의 교리 전체를 종합적, 체계적으로 수립하고 변증하는데 일생을 바쳤다.’라고 우리가 칼빈의 생애를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명한 칼빈신학자, 우리 개혁신학자, 벤자민 워필드(Benjamin B. Warfield)는 『기독교 강요』를 ‘개혁교회가 성경의 교리 체계로 들어가는 근본적인 서술을 한 논고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워필드 글들은 꽤 많은데요, 워필드야말로 가장 칼빈을 좋아했던 사람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칼빈에 대한 글들을 많이 쓰기도 하고 좋게 평가하는 것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대표적인 칼빈 학자였던 프랑수아 방델(François Wendel)은 ‘개혁파 개신교의 신학적 대전이다.’ ‘summa’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것을 체계적으로 요약해서 저술한 것이 바로 『기독교 강요』다.’라고 이렇게 이야기했고요.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개혁신학자 겸 역사신학자 윌리엄 커닝햄(William Cunningham)은 칼빈의 작업에 대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체계화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기독교를 완전히 조직한 것이 칼빈의 위대한 고유 업적이다.’ 그래서 칼빈의 가장 큰 업적은 ‘신학을 체계화’하고 ‘조직화’했다. 그리고 ‘『기독교 강요』야말로 기독교 신학사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라고 이렇게 평가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기독교 강요』는 1536년 초판 이후로 초기에는 주로 신경적 구조, 십계명이라든지 사도신경, 주기도문을 해설,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수록해서 전개해 가다가, 이제 1539년 제2판에서부터 조직신학적인 그러한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그의 주해와, 그러니까 주석과 설교에 그러한 글들에 대한 역량과 함께, 또 칼빈은 평생 신학 논쟁을 했거든요. 그 당시에 모든 중요한 논쟁들은 칼빈없이 이루어진 적이 없습니다. 루터란이든, 소치니안이든, 단일신론이든, 로마 가톨릭이든. 그래서 칼빈은 로마 가톨릭, 루터, 재세례파, 반삼위일체론자들, 소치니주의자들, 그다음에 단성중보론자들, 그러니까 모든 그 당대에 논의에, 논쟁에 칼빈이 중심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사실상 뭐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니고요. 한 번도 칼빈이 논쟁에서 진 적이 없습니다. 모든 논쟁을 다 이깁니다, 칼빈이. 그래서 일반계시와 일반은총, 성경의 영감과 증언,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와 경륜, 창조와 섭리,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 언약 체결과 전적 타락 및 원죄 교리, 자유의지 교리, 율법의 본질과 용법, 신구약의 일치와 경륜적 차이, 중보자 그리스도의 위격적 연합과 위격적 사역, 의의 전가와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믿음의 세 가지 요소, 회개, 칭의, 성화의 이중적 은혜, 그리스도인의 자유, 선택과 유기의 이중적 예정, 그리스도의 재림에 따른 성도의 부활과 심판, 그 다음에 교회의 본질, 특성, 표지, 직분, 권세, 그리고 성례에 있어서의 영적 현존, 영적 임재설, 그리고 교회와 국가에 관한 교리적 입장, 이런 것은 가히 칼빈이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교리적 진술을 『기독교 강요』가 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15페이지에 보시면, 『기독교 강요』가 성경의 가르침, 거의 전부를 교리 조목별로 분류하여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변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은 칼빈을 조직신학자로 여기거나, 『기독교 강요』를 조직신학서로 여기기를 꺼려하는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주로 역사적으로 많이 연구되어 온 부분이 있고요. 사실 요새 서구의 칼빈에 대한 관심은 역사적 관심이 사실 많습니다. 그러나 조직신학적, 교리적 관심은 상대적으로 조금 떨어집니다. 우리가 안동에 가면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이다 이러면 주로 역사적으로는 관심을 갖잖아요. 그런 거죠. 자기들의 하나의 문화유산 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면에서 좀 역사적 어프로치가 강하다 보니까 칼빈의 『기독교 강요』의 교리적 이런 부분이 좀 약하게. 혹은 또 칼빈을 한때 많이 연구했던 사람들이 다 바르티안들이었어요. 칼 바르트(Karl Barth)가 신학 강의를 시작할 때 『기독교 강요』를 가지고 시작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또 『기독교 강요』로 왜곡하는 바르트 신학에서 그런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사실 『기독교 강요』를, 칼빈의 신학을 정통 우리 교리적 입장에서 잘 이렇게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작품들은 손에 꼽을 만큼 적습니다, 생각 외로. 그래서 이런 부분들에 우리가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 이제 챕터 세 번째 입니다. 15페이지에요. “소위 ‘비평 전 주해’ 문제: 칼빈신학은 조직신학 일 수 없는가?” 이 부분은 제가 조금 그냥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데이비드 스타인메츠(David C. Steinmetz)라는 듀크 신학교에 그러한 교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이코 오버만(Heiko Oberman), 스타인메츠, 그 다음에 리차드 멀러(Richard A. Muller), 이렇게 이제 계보가 형성되거든요. 그리고 멀로, 톰슨, 뭐 그쪽, 수산 슐라이너, 또 비얼마, 다 스타인메츠 제자들입니다. 스타인메츠 학파, 사단이라고도 하고. 데이비드 스타인메츠가 사실 옥스포드 시리즈를 다 주관하고 있죠. 근데 요새는 인제 은퇴하고 했지만은. 이 데이비드 스타인메츠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가 하면, ‘성경해석이 비평 전 주해로 돌아가야 된다.’ 이겁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경 비평이 자유주의 신학과 함께 19세기의 시작되잖아요. ‘비평’이란 말은 성경이 잘못된 곳이 있다는 것이거든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 이전에는 성경이 틀렸다고는 이야기 안 했어요. 내가 성경을 바로 믿는 다고 이야기했지. 그러나 이제 19세기의 비평 신학으로부터는 성경이 틀렸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하거든요. 그러니까 그때, 성경 비평 시대 이후에 주해 방법에서 다시 돌아가야 된다, 이전으로, 이전으로 돌아가서 칼빈을 봐야 된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성경 비평 이전으로 돌아가서 칼빈을 봐야 된다. 자, 이것은 맞습니다. 이것은 맞습니다. 현대적 관점에서 칼빈을, 현대 비평학적 관점에서 칼빈을 본다는 것은 분명히 무리인 것은 맞습니다. 자, 이것은 오케이입니다. 그러나 데이비드 스타인메츠는 역사학자입니다. 그다음 이야기가 중요한데, 오늘날 조직신학자들은 전부 바르트나 핫지나, 여러분들 18페이지를 보십시오. 18페이지 셋째 문단에 제가 인용한 곳에 보면, 셋째 문단입니다, 18페이지에, “칼빈을 현대화하면서 그의 사상에 대한 어느 정도의 왜곡은 불가피하다. 칼빈은 중세 이후 가톨릭교회에서 양육된 신학자로서 핫지와 바르트와 같은 전통적 개신교인들의 세계에 편안할 수 없다.” 자, 이 말이 상당히 이게 참 어려운 이야기고요. 깊이 파고 들어가야 될 이야기인데, 첫째, ‘칼빈의 신학이 중세 후기 가톨릭 교회와 연관성을 갖는다.’ 이 역사 신학자들의 소위 컨티뉴이티 문제입니다. 칼빈의 신학도 그냥 시대의 산물이라고 보는 거죠. 이런 면에서는 사실상 칼빈에 대한 이해가 조금 신학적 이해라기보다 역사적 이해의 연속성 혹은 불연속성 그정도에 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보면 ‘핫지와 바르트와 같은 전통적 개신교도’라고 했는데, 핫지(Charles Hodge)와 바르트를 우리는 같이 볼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역사학자들의 눈에는 찰스 핫지나 칼 바르트나 같이 보이는 겁니다. 다 이들은 그냥 칼빈을, 칼빈의 작품을 신학화 했다, 조직신학화 했다, 그것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습니다. 바르트는 바로 읽지 못했습니다, 칼빈을. 그래서 리차드 멀러가 신정통주의자들이 칼빈을 읽지는 않고 이용만 했다. 그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바르트와 핫지, 모든 개신교의 정통 조직신학자들이 칼빈을 이용한 것은 아닙니다. 사변적으로 풀어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말인가 하면, 칼빈의 신학을 조직신학화한다는 자체를 거부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역사학자들은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조직신학이 뭐가 필요 있어 라는 말도 잘못하면 나올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그래서 역사신학적 어프로치로 조직신학 전체를 이야기 해 버리려고 하는 이런 것은 상당히 위험하거든요. 이런 것들이 사실상 우리가 면도칼로 그걸 나누어야 됩니다. 제가 미국에 유학가서 제일 처음에 스타인메츠가 강의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칼빈신학교에 와서. 그 다음에 리차드 멀로 교수님한테 한 과목을 들었습니다. 리처드 멀로 교수님 계셨고, 저는 조직신학을 공부하러 갔지만. 그때 저에게 딱 느껴지는 아젠다가 바로 그런거였거든요. 조직신학과 역사신학의 경계선은 어딘가? 그리고 굳이 그것을 분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왜 조직신학이 필요한가? 이런 부분들. 오늘 김규섭 교수님 또 성경신학에 대해서도 말씀하시겠지만. 또 성경신학이면 다 되는가? 편집비평학자들이 어떤 경향을 가지고 성경을, 성경 주해를 전개해 나가면 그것이 조직신학을 대체할 수 있는가? 이런 것들은 우리가 심각하게 질문을 던져봐야 되거든요.
그래서 스타인메츠 부분에, 15페이지에 보시면요. 스타인메츠에, 다시 15페이지 돌아가시면, “칼빈의 주요 직무는 성경해석이었다. 교리신학은 주해로부터 비롯되었고 주해에 종속되어 있었다.” 이렇게 전제하거든요. 언뜻 지나가면서 보면 틀린 말이 아닙니다. 성경을 잘 주해해야 교리가 나오죠. 그러나 여기에는 어떤 경향을 가지고 있느냐? ‘교리가 주해에 종속되었다.’ 이 말이 좀 과한 말입니다. 그래서 칼빈의 모든, 『기독교 강요』나 칼빈의 신학적 작품들은 교리주해 나왔다. 이렇게 스타인메츠가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벌써 틀린 이야기입니다. 사실상 칼빈의 작품들은 주석은 로마서 주석이 1541년에 나오고, 45년에 나오거든요. 근데 『기독교 강요』는 벌써 1535년에 쓰고 36년에 나옵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교리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제1차 신앙교육서”는 1537년, 38년에 나오거든요. 그렇게 보면 그게 벌써 어폐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먼저 주석을 하고, 먼저 설교를 하고, 그것을 집산해서 교리화 됐다라고 말하기 쉽지만, 사실상 교리적 관점 가운데 주석했다라고 말할 수도 있잖아요. 교리적 관점 가운데 로마서 주석이 나왔다. 여러분, 무엇이 앞섭니까? 무엇이 달걀이고 무엇이 계란입니까? 보통 우리가 쉽게 말해서, ‘뭐 교리, 교리, 이야기 해. 성경이면 되지.’ 그러나 성경이면 되지 하는 그 성경은 무슨 기준으로 읽습니까? 내 마음대로 읽습니까? 그것은 소위 묵상 신학이지요. 그건 위험합니다. 그거야말로 가장 위험합니다. 내 생각이 맞고 나에게 감동이 되면 그것이 별문제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바로 그게 ‘헤르시’(heresy)의 기원이거든요. 그게 이교의, 이단의 기원이거든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코 리스판시브하게, 서로 교호적으로 바라보는 정도는 우리가 좋지만, 그러나 교리가 주해에 종속되었다라고 말하는 정도까지 말은 상당히 이거는 경향을 가지는 이야기거든요. 이건 조심해야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가 요새 신복음이다, 이런 말을 쓰기도 하고, 이렇게 이야기 할 때, 그런 경향 같은 거 있잖아요. 전에 알파코스다, 이런 걸 이야기 할 때도, 알파코스도 전부 성경이 인용한다. 그런데 무슨 기준으로 성경을 인용하냐 이 말이죠. 그 니키 검블(Nicky Gumbel)이라는 알파코스를 만든 사람이 내가 보기에 이것도 성경적이다, 저것도 성경적이다. 그러다 보니까 솔제니치 작품의 “암병동”에 나오는 그 가르침도 성경적이다. 솔제니치는 무신론자임에도. 그러면 무엇이 성경적이냐? 이 말이에요. 여기에서 교리와 우리가 주해에 그러한 소위 면도칼을 갖다 데야 된다 이 말이에요. 날카롭게 그 부분을 바라보아야 됩니다. 그래서 스타인메츠나, 어떻게 보면 스타인메츠 학파에 대해서 제가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상당히 그쪽 분들은 쓰라릴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이런 말을 우리가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16페이지에 마지막 문단에 보면, ‘스타인메츠는 칼빈이 성경을 주해함에 있어서 멜란히톤(Philip Melanchthon)과 부써(Martin Bucer)의 단점을 지양하고 신학적 주제를 빠지지 않고 다루되 장황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간결함(brevitas)과 유익함(facilitas)’, 이것은 칼빈이 가장 많이 이야기한 것이거든요. 그리고 마지막, ‘그의 주석과 설교의 영향이 커졌음을 볼 때, 주해에 종속되어 있었던 것이 『기독교 강요』다.’라고 이렇게 주장하는데, 저는 이 말은 조심해야 된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언뜻 틀린 건 아니에요. 맞습니다. 말씀대로 교리가 생성되죠. 맞습니다. 말씀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교리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어떤 주해에 교리가 종속되었다는 이런 표현은, 주해는 뭐를 기준으로 주해합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텍스트(text)는 콘텍스트(context) 안에 텍스트가 있지 않습니까? 텍스트를 짜맞추고 어느 한 텍스트를 읽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봤을 때요.
그래서 17페이지에 둘째 줄, 스타인메츠가 칼빈의 교리신학은 주해로부터 비롯되었고 주해에 종속되어 있다라고 할 때, 그 주해는 ‘비평 전 주해’(precritical exegesis)다. 그래서 스타인메츠 식으로 이야기 하면 19세기 이후의 모든 조직신학은 하치든, 바르트든 전부 다 칼빈을 오해하는 겁니다. 그렇게 들릴 수가 있다 이 말이에요. 어떻게 보면 바르트가 칼빈의 리바이벌이라고 하거든요. 칼 바르트 밑에 제자들을 전부 바르트는 칼빈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게 했어요, 칼 바르트가. 그렇기 때문에, 한때 그냥 바르티안들입니다, 전부 다, 칼빈 학자들이, 주류 학자들이. 그러니까 그런 경향이 있으니까 아마 스타인메츠가 조금 바르트식으로 다 칼빈을 곡했다라고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최소한 찰스 핫지나 워필드나 바빙크나, 또 오늘날 우리 한국의 조직신학자들이나, 이런 사람들을 그 자리에 넣을 수는 없다 이 말이죠. 우리는 어거스틴(Augustinus)과 칼빈과 이러한 정통성 가운데서 교리적인 그러한 이해를 해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스타인메츠는 성경의 영감일라든지 무오라든지, 또 칼빈이 말했던 성경의 자증성, 스스로 말씀은 증거한다든지, 이런 것을 강조하면 조직신학적인 그런 체계와 맞지 않다라고 자꾸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말이에요. 그건 아니다 라는 거죠. 우리는 성경 영감을 인정하고, 성경 무오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오하다. 이게 무오하다는 것이 무모한 것이 아니라는 거죠. 성경 무오가 조직신학적이라는 것이죠. 체계적이라는 것이죠. 그 가운데 신학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성경은 무오함이, 무오하다, 성경은 틀린 것이 없다, 무슨 완전축자영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것은 비 신학적이다. 그래서 현대의 개혁신학자들조차도 칼빈을 곡해하고 있다. 이렇게 말한다면. 그래서 찰스 핫지와 바르트를 같은 자리에 놓는다면 그것은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죠. 사실 제가 리차드 멀러 교수님 만났을 때 이 부분이 가장 말하기 어려웠던 부분이에요. 그래서 제가 리차드 멀러 교수님 하고 박사과정 안 한 것입니다, 사실은. 그분은 역사학자고요. 역사학이 틀린 게 아니라,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는 좀 다른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 그래서요, 19페이지에, “『기독교 강요』에 대한 조직신학적 연구”. 사실 『기독교 강요』에 대한 조직신학적 연구는 저는 개인적으로 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에게 더 많이 해야 된다. 마치 칼빈의 연구를 끝난 듯이 생각하지 말자. 더 많이 해야 된다, 정말. 우리, 그렇게 생각보다 기독론 몇 개 없다. 글이 몇 개 없거든요, 사실상. 그러니까 많이 연구해야 되는데. 『기독교 강요』는 ‘교훈적’, ‘고백적’, ‘변증적’ 특징을 갖는다. 저는 항상 이렇게 칼빈의 신학을 세 가지, ‘교훈적’이라는 말은 전체 성경의 가르침을 전개했다. ‘고백적’이란 말은 그것을 사변적으로 전개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으로. 그래서 내가 믿지 않는 것은 가르치지 않고 배우지 않는다. 그런 고백적인 경향. 그리고 ‘변증적’이라는 것은 신학 논쟁이나 이런 것을 통해서 그렇게. 『기독교 강요』에는 다 들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요, 신학 논쟁들이.
그래서요. 20페이지에 보시면, 그 찰스 팔티(Charles Partee)라는 분, 둘째 문단에 에밀 듀메르고(Emil Doumergue), 또 프랑수아 방델, 또 최근에도 데이비드 홀(David W. Hall)이나 피터 릴벡(Peter A. Lillback), 릴벡은 여러분들 아시죠. 그 다음에 빌헬름 니이젤(Wilhelm Niesel)이나 헬름(Paul Helm), 어쨌든 조직신학적 연구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뭔가 정통적, 요새 예컨대, 삼위일체론, 또 요새 많은 신학적 논의가 되는 영원한 나심, ‘Eternal Generation’, 이런 논지에 들어가면 칼빈은 그냥 한 줄밖에 안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우리가 좀 많이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개혁신학의 어떤 조직신학적 입장을 이야기 할 때, 칼빈을 좀 더 귀하게. 예컨대 삼위일체론에서 칼빈을 뺄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제가 개혁신학의 삼위일체론이러면 워필드의 삼위일체론이 당장 생각이 나는데요. 워필드의 삼위일체론이 바로 칼빈의 삼위일체를 다룬 거거든요. 그게 워필드의 삼위일체론이거든요. 그러니까 이렇게 본다면 워필드가 100년 전이지 않습니까? 오히려 100년 전의 칼빈에 대한 조직신학적 연구에 못 미치고 있다, 오늘날 경향이. 그래서 좀더 우리가 교리적 연구나 이런 것을 심화시켜야 되고, 또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 강요』가 제대로 보인다. 그것이 제가 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었습니다.
21페이지에 보시면, 『기독교 강요』가 조직신학 체계를, 1539년인 제2판에서부터 갖추었는데요. 이러한 『기독교 강요』의 조직신학적 체제의 선구적인 작품이 바로 ‘신앙교육서’입니다. “제1차 신앙교육서”. 제1차 신앙교육서는 문답식이 아닙니다, 칼빈은. 서술식입니다. 이 작품은 정말 귀한 작품이라고 저는 여기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번역이 됐습니다마는. 그리고 그 마지막 1559년 『기독교 강요』는 사도신경의 순서를 따른다는 점에서 신경적이고, 또 교리 조목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앙교육적이며, 또 로마서의 영향도 분명히 나타납니다.
그리고 22페이지에, “칼빈신학: 『기독교 강요』에 개진된 교리적 요체”인데요. 칼빈의 신학의 소위 중심 교리가 무엇인가? 라는 논의는, 요새는 조금 덜하지만, 제가 미국에 처음 갔을 때만 해도 여전히 강한 논의였습니다. 칼빈신학의 중심 교리가 뭐냐? 뭐 예정론이냐, 삼위일체론이냐,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냐, 그런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왜 칼빈신학의 중심 교리, 소위 ‘센츄럴 도그마’(central dogma)에 대한 논의가 이렇게 많으냐? 그것은 사실 칼빈이 모든 성경을 다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거스틴은 ‘오직 은혜’, 느껴지거든요. 어거스틴 작품 읽어보면 ‘그라티아’(gratia)가 느껴집니다. ‘오직 은혜 신학자’, 이건 맞습니다. 또 루터는 ‘오직 믿음’ 강조한 것, 로마서 주석이나, 맞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보면 뭘 하나를 강조했다고 보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이것이야말로 ‘리얼 칼빈’이다. 왜냐? 모든 성경이 다 중요하다. 그게 이제 우리가 강해 정신 아닙니까? 모든 성경이. 루터는 어떤 구절은 길게, 그리고 어떤 건 빠뜨리고, 또 어떤 성경은 귀하게, 또 어떤 성경은 좀 못하게 알다시피, 야고보서는 지푸라기다 이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칼빈은 모든 성경이 다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칼빈에게 있어서 중심 교리는 없다는 게 제 이야기, 제 답입니다. 칼빈에게 있어서 중심 교리는 없다. 그래서 굳이 저보고 이야기 해 보라고 그러면,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칼빈의 중심 교리라 해가지고 그냥 쭉 14가지를 써봤습니다, 한 문장으로. 그래서 제가 한 문장으로 말해보겠습니다 하고는 그냥 한 두 페이지를 썼습니다. 그게 인제 여기 23페이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칼빈신학이 재미있습니다, 여러분들, 되게 재미있습니다. 23에서 25페이지까지, 칼빈신학의 중심 교리를 저에게 말하라면, 이 14가지를 이야기해 보겠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 참조해 주시고요.
25페이지에 보면, “칼빈신학에 대한 조직신학적 해석과 이해가 요청된다.” 여기에, 그래서 저의 논제는 칼빈의 신학은 17세기 칼빈 신학자들에 의해서 비로소 신학화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칼빈의 칼빈신학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제 주장입니다. 칼빈의 칼빈신학. 그것의 계승, 심화, 그것이 17세기이다. 그렇게 저는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26페이지에 보면, 오늘날 가장 대표적으로 한 두 가지 제가 논제를 잡아봤습니다. ‘제한속죄’와 ‘믿음’에 관한 부분인데요. 26페이지에, 칼빈의 제한속죄론에 대해서 학자들의 논의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제한속죄라는 것은 바로 택한 받은 사람만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가 그들만을 위한 것이다. 여기에 핵심이 있지 않습니까? 이게 ‘리미티드 아톤먼트’(limited atonement)인데요. 그 칼빈의, 예컨대 26페이지에 보시면, 리차드 멀러, 멀러 교수님이 칼빈의 요한일서 2장 1절, 2절 주석을 인용하면서, 사실상 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스콜라신학의 영향이 좀 남아 있고. 그런데 대체로 제한속죄는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건 인제 뭔가 하면, 성경 주해나, 이런 것을 어느 부분을 따와서 칼빈은 모호하다, 이렇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그리고 27페이지에 보면, 로저 니콜(Roger Nicole), 니콜 같은 사람은 개혁신학자 아닙니까? 그런데 ‘칼빈의 제한속죄에 대한 입장을 다룬 많은 논문이 있지만, 관점 자체가 다양하고 해석의 취지나 의도가 달라서 일의적인 결론에 이룰 수 없다.’ 이렇게 또 이야기 하고 있어요, 니콜이. 이 분은 뭐 아무 말도 안 한 거와 똑같아요. 제한속죄에 대해서 논문을 하나 길게 썼는데. 왜 그럴까요? 전체를 안 보니까 그런 거예요. 교리적으로 안 읽으니까 그렇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제가 여기에서 제안했습니다. 둘째 문단, 제한속죄에 대한, 리미티드 아톤먼트에 대한 칼빈의 입장을 우리는 다음과 같이 조직신학적 접근을 해야 됩니다. 첫째, 이중 예정론을 전개하면서 공로 없는 은혜, 빚진 형벌, 마땅한 형벌. 그래서 이렇게 봤을 때, 이중 예정론에 기초했을 때, 그리스도의 공로는 택함 받은 사람들만을 위한 것입니다. 둘째, 중보자 그리스도의 위격적 연합에 대한 속성교통론에 따르면, 신성에 따라서, 인성에 따라서. 인성에 따라서 죽으시고 값을 치르신 것은 바로 택함 받은 사람들만 위한 것입니다. 어떤 보편적, 추상적, 은유적 값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이. 그래서 이것은 제한속죄라는 개념과 위격적 연합 교리, 신인양성의 위격적 연합 교리가 같이 가거든요. 그리고 셋째, 회개, 중생, 칭의 등의 요소에 봤을 때 의의 전가가 없으면 칭의도 없고 성화도 없습니다. 개혁신학의 이중 은총론은 의의 전가, 의의 전가는 그리스도의 것을 내 것 삼아 주는 것인데, 의의 전가가 없이 구원이 없다고 봤을 때,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택함 받은 사람들만 위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넷째, 실제로 그러면 성경 구절은, 이들은 성경 구절을 덜 파악 한 거죠. 이런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넓게 성경 구절을 바라보면, 디모데전서 2장 5절,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하나요 하는 그 부분 아닙니까? 디도서 2장 11절, 또 우리를 대신하여 자기를 주심, 2장 11절에서 2장 14절까지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디도서에. 이 부분에 보면 칼빈은 이렇게 주석하고 있어요. ‘삶의 다양한 계층들이나 종류들’, 성경에서 모든 사람이라고 한 것은 모든 사람이란 뜻이 아니라 어떤 계층의 사람이든 어떤 민족의 사람이든 그걸 이야기한다는 것이에요. 전부라는 뜻이 아니라. 그래서 ‘그리스도의 의는 어떤 민족이나 인종이나 계층에 무관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 그러나 모든 사람은 아닌.’ 그래서 28페이지에 셋째 줄 보시면, ‘누구든지 구별 없이 구원을 얻지만, 예외 없이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다.’ 이게 맞지 않습니까? 누구든지 구별 없단 말은 한국 사람도 구원받고, 일본 사람도 구원받고, 저 사우디 아라비아 사람도 구원받고, 택함만 받았다며, 그러나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이렇게 해석을 해 들어가면 제한속죄에 대해서 칼빈의 입장이 모호 하다든지, 이러한 이론은 나올 수가 없는 겁니다. 정확한 제한속죄론에 서 있는 것이죠, 칼빈이. 이런 것이 아까 스타인메츠 식으로 너무 주해만 가지고 전체를 보지 않고 몇몇 구절만 가지고 봤을 때 전혀 다른 결론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그래서 그냥 주해만 가지고 모호하다, 모호하다 이런 말들을 쓰고 이런 것들은 아니다. ‘믿음’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에 대한 것도 ‘칼빈의 믿음은 중세적 믿음관을 가지고 있다’라고 이야기 하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믿음은 구원의 믿음이고, 칼빈은 분명히 믿음으로 생명을 얻고 생활도 얻고, 칭의와 성화가 다 오직 믿음으로. 그리하여서 이중적 은총론을 전개하거든요, 『기독교 강요』 3권 11장에서 18장까지. 그런 것을 봤을 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칼빈이 말하는 믿음은, 아까 말씀드렸던, 의의 전가, 또 언약적 전가, 그것에 기초한 구원의 믿음입니다. 어떤 토마스 아퀴나스적인 자연신학적 믿음이 아니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은 분명히 중세적 관점에 믿음관을 가지고 있었다라는 것은, 물론 영향은 받겠죠, 어떤 부분에요.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순 없다. 그것을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 30페이지에, 이제 제가 3분 남았는데요. 간략하게 말씀하겠습니다. 조직신학이라는 말은 일의적으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성경의 가르침 전체를 교리 조목별로 체계적으로 다룬다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이 말의 뜻은 성경 주해와 조직신학이 이분법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혁신학자들은 정통 신학을 가르칠 때 교리라는 말이 결코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되는 사변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칼빈이 가장 금한 것이 바로 사변적, 그러니까 로마 가톨릭을 비판할 때 항상 사변적 신학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칼빈의 신학은 철저히, 우리 개혁신학은 성경 주해적 신학입니다. 그래서 그 밑에 보시면, 마지막 문단, 칼빈은 교리 조목별로 『기독교 강요』를 조망하면서 제 1권 160절의, 쭉 제가 나열했습니다. 여기선 제가 읽지는 않겠습니다. 전 교리를 망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독교 강요』에. 쭉 교리를 제가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31페이지에 보시면, 셋째 문단, 필자는 이번에 1559년 라틴어 최종판 『기독교 강요』를 번역하면서, 제가 『기독교 강요』를 번역하면서 1277절의 절의 제목을 새로 달았습니다. 칼빈은, 4권 80장 1277절인데요, 『기독교 강요』가, 권, 장까지는 제목을 답니다 만은 절은 제목을 달지 않았습니다, 칼빈이. 그러니까 독일의 바르트 신학자 오토 베버(Otto Weber)가 달았거든요, 절 제목을. 그런데 또 미국에서도 베틀즈(Ford Lewis Battles)가 바로 그냥 그 절 제목을 차용해서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기독교 강요』 1권 1장 1절부터 절 제목이 칼빈의 신학과 맞지 않습니다. 그 제일 처음에 뭡니까? 바로, ‘우리를 알아야 하나님을 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절 제목이. 이건 바르트적 입장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번 기회에 1277절의 제목을 새로 다 붙였습니다. 그리고 절 제목에 단지 소제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제가 들어가도록 그렇게 했고요. 각주가,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 강요』에 각주 작업은 사실 1960년대에 지금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2020년 현 단계에서 각주 작업을 했습니다. 그래서 각주가 한 4,000개, 5,000개 들어 있는데요. 그것도 우리가 유익하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각주 작업이나 이런 것은 주로 맥닐이 했거든요, 존 티 맥닐(John T. McNeill)이나 이런 사람들이 일단 역사학자고, 유니온 신학교 교수였거든요, 뉴욕에. 그러다 보니까 각주 작업이 신학적 작업이 없고. 그러니까 옛날에 우리 『기독교 강요』에는 칼빈에는 성경 무오가 없다, 행위 언약 사상이 없다, 전부 다 다른 것으로 각주를 붙여 놓은 것을 우리가 읽었습니다, 옛날에. 그러나 이제는 다 잘못된 것은 제가 해서 각주를 하고, 또 마지막에 그렇게 그 용어집도 실었습니다.
32페이지에 보시면, 마지막 네 줄, 우리는 칼빈을 ‘조직신학자로서, 『기독교 강요』를 조직신학서로서 합당하게 바라보게 되며, 칼빈주의자들과 ’맞서는’(against) 칼빈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안에’(with-in) 있는 칼빈을 만나게 되고요. 『기독교 강요』는, 무엇보다 그 1559년 최종판은 이러한 칼빈을 그려내는 최고의 붓(筆)이자 최고의 묵(墨)이라 할 것이다.’라고 이렇게 결론을 지었습니다.
감사합니다.